[사설]새로운 千年을 위하여

  • 입력 1998년 7월 24일 19시 20분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들의 신변안전을 위한 우리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키로 했다는 보도는 폭염 속의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스럽다. 생각해 보라. 금강산을 구경하면서 남쪽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할 수 있다. 뿐만인가. 북한은 사회관습을 이유로 관광객들을 억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통일부관계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뜻밖의 진전이고 양보’다.

우리는 이 진전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부의 대북 화해, 포용정책이 거둔 의미있는 결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속협상이 채 끝나지 않았으므로 속단은 어렵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더 필요로 하고 있는 쪽은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전략적 대응이라는 속성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반응을 보아가며 대응해 나가듯이 북한도 우리의 반응을 보아가며 정책을 결정하고 수위를 조절한다. 우리는 흔히 이 점을 간과한다. 정부가 ‘햇볕론’을 되뇔 때 북한은 잠수정과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남쪽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그 동안 주시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다음 행동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너무도 합리적이다.

우리는 신변안전문제에 대한 북한의 양보가 우리의 대북 화해, 포용정책에 대한 그들의 신뢰에서 비롯됐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쪽의 행태를 지켜보니까 적어도 경제분야에서 만큼은 화해하고 협력할 마음이 돼 있는 것 같다’는 믿음에서 나왔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란 결국 이런 식으로 한매듭 한매듭 풀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신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뢰가 있음으로 해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예측 가능성을 토대로 해서 일관된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일관된 정책은 다시 신뢰를 낳아 그 선의(善意)의 순환은 계속된다.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최근 북한에 대규모의 추가 식량지원을 하기로 한 것도 일관성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본보 발행인의 시국제언(24일자)을 통해 대북 화해, 포용정책이 시대적 소명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남북관계는 용어(用語)나 개념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작은 일에서부터 협력하고 교류할 때 비로소 관계개선의 길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들이 보다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북측과 머리를 맞대고 세세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협의해 나가는 것이 곧 시대적 소명으로서의 대북 화해, 포용정책인 것이다. 이를 굳이 ‘햇볕론’으로 윤색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또 ‘햇볕론’과 무관하다고 강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첫 금강산 유람선이 예정대로 9월25일 출항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남북의 모든 동포가 올해를 민족공동체 회복의 원년으로 삼아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21세기가 목전에 있다. 새로운 천년에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반목하고 대립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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