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닥터]권영옥/재취업, 고령자 울리는 사회

  • 입력 1998년 7월 20일 19시 10분


인력은행을 가장 먼저 찾아오는 구직자는 대개 고령자들. 고령자 상담창구는 다른 창구에 비해 늘 오전에 바쁘다. 그만큼 구직에 열심이기 때문.

명문대를 졸업한 P씨(60)는 얼마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불쾌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다. 도매 및 상품중개업을 하는 직원 8명의 소규모 회사와 접촉했을 때의 일. ‘월급 2백만원, 상여금 400%에 종합관리자로 일할 분을 찾는다’는 업체였다. 40명 직원을 둔 업체에서 5년간 관리직을 맡았던 P씨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기회.

전화로 몇가지 물어본 뒤 면접 일정을 잡았다. 사장면접을 거치면서 ‘뭔가 말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부장이라는 사람이 ‘1천만원을 투자해야 일자리가 확실히 보장된다’고 은밀히 부추기는 게 아닌가. P씨는 속았다는 기분에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학력이 높고 관리직이나 전문직 경력이 많은 고령 구직자들이 갈 곳은 사실 많지 않다. 관리직 사무직 영업관리 등을 내걸고 50세 이상 고령자를 찾는 업체의 90% 이상은 다단계판매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엔 건강보조식품회사중 50세이상 점장(店長)을 채용하면서 투자를 요구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이들 업체엔 전문직 경력자들이 많이 몰리지만 속내를 알고나면 허탈해진다. 그렇다고 고령자들이 ‘눈높이’를 낮춰 경비 등 단순직을 원해도 업체에서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고령 구직자들을 ‘무료함도 덜고 건강관리 차원에서 직장을 구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우리사회다. 그러나 생계유지 때문에 돈벌이에 나선 안타까운 경우가 늘고있다.

고령자들은 산업근대화의 역군이다. 과거 경력을 활용할 수록 개인이나 회사발전에 도움이 된다. 고령자는 ‘잉여인력’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잘 활용해야할 ‘경력자’이다.

권영옥(서울 인력은행 전문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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