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명성황후」 美순회공연 나선 윤호진씨

  • 입력 1998년 7월 19일 19시 29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도 다시 일어선 민족 아닙니까. 지금은 IMF에 시달리지만 우리는 반드시 도약하리라는 것을 세계에 분명히 알리겠습니다.”

지난해 8월15일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로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를 놀라게 한 제작자, 뉴욕타임스로부터 ‘진정한 장관이 어떤 것인지 일깨워준 뮤지컬’이라는 극찬을 받은 연출자, “조선이여 무궁하라, 흥왕하여라…”는 피날레로 객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윤호진(50·에이콤 대표).

그가 이번에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으로 동아일보와 함께 ‘명성황후’ 미국 순회공연에 나선다. 31일∼8월23일 지난해와 같은 무대인 뉴욕 링컨센터의 스테이트극장(객석 2천8백석)과 9월13일∼10월4일 로스앤젤레스의 슈베르트극장(2천2백석).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사의 장기공연을 제외하고 외국 작품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각각 한달가량 장기공연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해 열흘간 12회 공연에서 2만5천여명의 관객을 모아 60만달러를 벌었습니다. 막바지 나흘 공연은 객석점유율 1백%를 이뤘지만 공연기간이 짧아 우리돈 8억원의 빚을 져야 했지요.”

그러나 올해는 뉴욕서 29회 공연에 최소한 5만명을 동원, 2백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릴 계획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마찬가지. 이를 위해 두 지역에서 뉴욕타임스를 비롯, ABC CBS등 유수 매체에 각각 25만달러의 광고를 내기로 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이다. 홍계훈(김민수 분)의 무과급제와 임오군란 장면을 새로 넣어 역사성과 긴박감을 살렸고 여주인공(김원정 이태원)의 아리아도 보완, 명성황후의 기품과 소프라노의 테크닉을 한껏 돋보이도록 했다. 새로 작곡한 몇몇 노래는 외국인 관객도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한국인의 기개에 세계인의 감성을 넣어 균형을 맞춘 셈. 무대세트와 의상 제작에도 1억원을 더 쏟아부었다.

“이제 문화상품 본격 수출에 나선 것”이라는 윤호진은 지난해 작품의 수준을 충분히 검증받았으니 올해는 흥행에 성공, 돈을 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비쳤다.

그가 ‘명성황후 수출’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완성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죠. 사명감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뮤지컬에서 만큼은 뭔가 해놓아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야 죽더라도 의미있는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것 같고…”

78년 나이 서른살에 극단 실험극장에서 ‘아일랜드’를 연출하면서부터 그의 연극인생엔 실패가 없었다. 소극장운동을 주도하며 만들어낸 ‘에쿠우스’ ‘사람의 아들’ ‘신의 아그네스’ 등으로 윤호진은 연극에도 ‘흥행’ 또는 ‘스타’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신화를 이끌어 냈다.

82년 “정통극을 공부하겠다”고 떠난 영국 연수. 그러나 정작 자신을 일깨운 것은 런던의 뮤지컬 바람이었다. 변화없는 무대를 관객은 외면한다는 것, 우리 연극의 세계화 기업화의 해법은 뮤지컬에 있다는 것.

84년부터 87년까지 뉴욕대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공부했다. 뮤지컬 볼 돈을 벌기 위해 뉴욕 뒷골목에 좌판을 벌여놓고 노점상을 하면서 스스로 약속을 했다. “내 반드시 브로드웨이에 한국의 뮤지컬을 올리리라.” 그리고 10년만에 그 약속을 지켜냈다. 바로 1997년 8월 15일 광복절에.

이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명성황후’를 들고 미국 순회공연에 나선 그는 “건국 50년을 맞아 우리가 이런 창작품을 뮤지컬의 메카에 내놓을 만큼 성장했음을 세계에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때 ‘한국인은 역사의 교훈을 깨달을 줄 아는, 그것을 문화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일본언론은 ‘아시아의 영광’이라고까지 극찬했지요. 그러나 쉽게 잊는 것이 또 우리의 단점 아닙니까.”

윤호진은 ‘다시는 잊지 말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명성황후의 원혼이 찬란하게 부활한 것 같다고 말한다. 역사를 은폐하는데 급급했던 일본땅에서 올 연말 ‘명성황후’를 공연할 예정이라며 “명성황후의 원혼이 쎄긴 쎈 모양”이라고 웃기도 했다. 자신이 연출한 연극 ‘들소’처럼 뚝심과 배짱을 지닌 연극인. 정밀기계학과 출신다운 완벽주의,작품을 형상화하는 뛰어난 기량. 그러나 그는 “내가 지닌 유일한 재산은 인복(人福)”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윤호진이 하는 일이라면 집을 팔아서라도 돕는다”는 다섯명의 극단 운영위원에 이어 올해는 ‘명성황후’에 관심 가진 한국인 모두가 그의 뒷심으로 자리잡은 것일까.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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