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 리포트 20]美 루슨트社의 도전

  • 입력 1998년 7월 15일 19시 45분


‘정보통신의 터줏대감도 매일같이 새로운 꿈을 꾼다.’ 미국 뉴저지주 머레이 힐에 자리잡은 루슨트 테크놀로지사의 벨연구소에 가보면 그들의 꿈이 손으로 잡힐 듯 다가온다.

벨연구소 로비에는 ‘특허시계’가 있다. 연구원들이 그동안 받은 특허의 갯수를 알려주는 시계다. 1925년 미국에서 특허제도가 본격 시행된 이후 벨 연구소가 지금까지 받은 특허는 모두 3만5천여개. 지금도 하루에 2개 정도의 새로운 발명이 벨 연구소에서 이뤄진다.

1907년 웨스턴 일렉트릭사와 AT&T가 통합하면서 탄생한 벨 연구소는 통신분야의 국제적인 두뇌탱크 역할을 해왔다. 초기 뉴욕 맨하탄에 자리잡았던 연구소는 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군이 맨하탄을 폭격할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지금 자리로 이사했다.

벨연구소에서 만들어내는 발명은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루슨트의 노력의 결정체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음성통신장비 분야의 세계 1위업체 자리를 확고히 굳히고 있는 루슨트는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루슨트는 96년 기간통신사업자인 AT&T를 서비스회사 통신장비업체 컴퓨터업체 등 3개사로 분할한 결과 탄생한 통신장비회사. 때문에 루슨트의 역사는 AT&T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올해로 1백29년이 된다. 루슨트는 이중 1백여년 이상을 세계 최대의 기본통신장비업체로 평가받아왔다.

루슨트는 최근 통신망을 통해 음성뿐 아니라 문자 영상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데이터 네트워크에 본격 진출하고 있다. 전통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선두주자에 만족하지 않고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데이터 네트워크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폴 프로보스트 이사(국제관계담당)는 “편안하게 1위를 지키기보다 새롭게 펼쳐지는 시장에 끊임없는 혁신정신을 갖고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데이터 네트워크분야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루슨트는 그같은 노력의 결실로 전화선과 인터넷을 이용해 고속의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 이 장비는 6월부터 미국 최대의 인터넷 사용량을 자랑하는 MCI사의 인터넷망에 사용되고 있다. 루슨트가 만든 인터넷 통신장비는 초당 3천2백만개의 데이터 묶음(패킷)을 처리할 수 있다. 또 설치 유지보수 비용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정보통신업계 최대의 화두는 음성과 데이터의 결합이다.

데이터 통신업체들은 음성기능을 추가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여보세요’전화를 위한 교환기를 만들었던 업체들은 데이터 전송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데이터 네트워크 시장은 해마다 세계적으로 25%정도 성장해 2001년까지 2백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음성망과 데이터통신망은 서로 다른 목적에서 다른 형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통합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음성과 데이터통합망이 새로운 통신망의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화는 음성과 데이터의 결합을 나타내주는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VoIP(인터넷을 통한 음성전송)’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와 음성을 모두 지원하는 장비가 네트워크 장비시장에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데이터 음성통합장비는 기존 네트워크 통신장비를 모두 설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 구축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단일망으로 데이터와 음성을 통합 전송할 수 있어 유지 및 관리비용도 줄어든다.

루슨트의 리차드 맥긴 회장은 “데이터 통신을 통해 네트워크 혁명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으며 루슨트는 이런 혁신의 선두에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루슨트는 데이터 부문과 음성부문의 서비스가 함께 이뤄져야 함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차세대 통신구조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슨트는 데이터 네트워크 시장에 뛰어들면서 ‘기업 혁신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는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

▼새로운 표준을 만든다〓루슨트는 데이터 네트워크와 관련된 다양한 표준화를 이끌고 있다. 우선 홈네트워킹 규격 표준화에 앞장섰다. 루슨트는 IBM 휼렛팩커드와 함께 홈PNA(Pipeline Networking Alliance)를 설립했다.

1백달러 이하의 저가통신장비를 이용해 PC에 설치할 수 있는 홈네트워크를 구성하자는 얘기다. 이들은 99년에 10Mbps급의 속도로 가정에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차세대 홈네트워크 제품을 발표할 계획이다.

▼협력할 수 있는 곳과는 모두 손을 잡는다.〓루슨트는 그동안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모토롤러와 6월 손을 잡았다. 두 회사의 디지털 신호처리(DSP)기술을 공유하고 차세대 DSP코어를 공동개발키로 했다.

▼협력이 안되면 분야별 1등기업을 인수한다.〓데이터 네트워크 사업부문을 강화하는 노력의 하나로 루슨트는 몇차례 기업의 인수 합병을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인터넷 원격접속 네트워킹 솔루션 업체인 리빙스턴사를 인수했다. 올해 1월에는 고성능 근거리통신망(LAN)장비개발업체인 프라미넷을 잡았다. 또 5월에는 차세대 고성능교환기 장비회사인 유리시스템을 인수하기도 했다.

루슨트의 끊임없는 혁신노력은 최우량 강자기업도 매일같이 변해야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머레이 힐〓김승환기자〉sh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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