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뻔뻔한 퇴직금잔치

  • 입력 1998년 7월 8일 19시 35분


일부 퇴출 금융기관과 공기업에서 자행되고 있는 거액의 퇴직위로금 잔치는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비이성적 행동이다. 정부발표대로 일부 퇴출금융기관 임직원들이 부실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보다 나눠먹기식으로 퇴직금부터 챙겼다면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은행이나 한국전력이 퇴직자들에게 수억원씩 위로금을 나눠준 것은 국민의 돈을 우습게 아는 안하무인적 행동이다. 이런 작태를 보아야 하는 금융기관 고객이나 납세자의 마음은 암울할 뿐이다.

충청은행이나 장은증권의 경우 임직원들은 가만히 있어도 소정의 퇴직금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노사합의에 따랐다고는 하지만 합병 또는 휴업 직전에 전격적으로 퇴직위로금을 챙긴 것은 여론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비록 1년치 급여밖에 안된다고 하더라도 당당한 일이라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묻고 싶다. 밀린 노임조차 받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회사를 떠나는 부도기업 근로자들이 과연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수준이 그 정도라면 해당 금융기관이 부실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지나간 얘기지만 한은 한전 한국통신 등 정부기관 또는 정부투자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어찌 보면 환란의 가장 큰 책임소재 기관 중 하나다. 그런 한은이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도 명퇴자들에게 30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퇴직금에 얹어 주었다. 한전과 한국통신도 소비자인 국민이 낸 전기료와 전화료에서 같은 비율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매년 공공요금을 올려 온 목적이 결국 위로퇴직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수억원씩 목돈을 챙긴 공기업 퇴직자들 중 일부가 예금이자로 불로소득을 챙기는 것은 사회에 위화감을 주는 일이다.

금융기관이나 공기업이 통폐합하거나 임직원을 감축하는 목적은 한마디로 국가경쟁력 제고에 있다. 이런 판에 30개월치씩 뭉텅이 위로금을 나눠가지면서 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침내는 선례에 맞추려다 보니 수천억원대의 위로금을 마련하지 못해 인원조정을 할 수 없는 웃지못할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한전이 좋은 예다. 구조조정을 못하면 남는 건 공멸이다. 우리가 지금 그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차제에 퇴출 금융기관 임직원의 퇴직금 챙기기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철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공기업의 거액 위로금 관행도 일반 기업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용납될 수 있는 일인지 검토되어야 한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구조조정의 출발선에서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고통이 어떤 특정계층에게만 주어진다면 환란극복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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