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문점 축전 성사되려면…

  • 입력 1998년 6월 19일 19시 34분


정부가 북한의 ‘8·15 판문점 대축전’ 개최 제의를 원칙적으로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판문점을 민족화해와 교류의 장소로 만들자는 것은 우리의 일관된 대북(對北)정책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이번의 북한 제의에는 보안법 철폐나 주한미군 철수 등 종전의 축전 개최 전제조건들이 일단 빠져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북한의 제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아직 이르다. 북한은 이번 제의의 경우 정치색을 배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한 듯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진심인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이번 제의가 김정일(金正日) 노동당 총비서의 이른바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그 배경에는 역시 의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다. 과거와 같은 통일전술전략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축전 준비협상이나 행사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정치 군사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당장 한총련이나 범민련 등 반국가 이적단체들의 참가문제만 해도 그렇다. 북한은 참가대상이 ‘북과 남 해외의 정당 단체들과 각계 인사들’로 정견과 신앙 소속에 관계없이 누구나 행사에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참가하면 행사의 성격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뻔하다. 겉으로는 정치색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결국 체제나 이데올로기 선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같은 단체들의 참가를 불허하겠다고 한 것은 당연하며 차제에 북한도 참가대상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북한이 제의한 민족통일예술축전도, 동포단합대회도 성사될 수 있다.

현재의 한반도 주변 여건으로 볼 때 정부가 북한의 8·15축전 제의에 자신감을 갖고 호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나친 성과욕에 떼밀려 조급히 대처해서는 안된다. 북의 통일전략전술을 경계해야 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축전 준비를 위한 남북대표간 협상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서로간 감정대립만 격화된다면 축전협상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된다.

남북한이 8·15대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무엇보다 명심할 것은 행사의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동포애를 바탕으로 한 축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남북한 모두가 민족화합과 화해 단합을 축전의 구호로 내 걸고 있다. 양측이 그같은 정신과 원칙을 끝까지 살려나간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내주쯤 북한에 축전 논의를 위한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제의할 모양이다. 북한측의 성의있는 반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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