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외자유치 부채탕감

  • 입력 1998년 6월 15일 19시 53분


뉴욕 월가(街)는 기업사냥꾼들의 본거지다. 회사형태를 갖춘 것만 해도 2백개가 넘고 자문역을 하는 개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3백60이 넘는다. 작년말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아래 들어가자 이들 기업사냥꾼들은 대목을 만났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서울 상공을 선회하는 독수리 그림과 함께 ‘기업사냥꾼 한국출정에 나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무자비한 공세앞에 시달릴 한국 기업들을 동정했다.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유치가 필수적이다. 극심한 자금난을 겪는 기업으로서도 계열사 매각은 화급한 사안이다. 이럴 때 정부의 매각독촉은 외국자본에 호재다.

국제 기업사냥꾼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알토란같은 국내기업들이 헐값에 팔려 나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화에너지가 국제가격 12억달러가 넘는 발전사업을 8억여달러에 팔게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매각대상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 달라는 것도 외국자본들의 단골 요구사항이다. 미국 쿠어스가 진로와의 협상에서 고집하고 있고 최근에는 포드가 기아인수 조건으로 내세웠으며 GM이 대우와 합작투자 상담을 하면서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이 그것이다. 탕감해 주는 부채는 바로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어이없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상대의 취약점을 이용해 최대한의 과실을 얻어내려는 것은 국제 자본의 공통된 속성이다. 따라서 그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턱없는 요구를 서둘러 들어주려는 분위기가 더문제다.

외자가 급하긴 하지만 들여올 때의 나쁜 조건은 경제회복 후에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잘못 유치된 외자는 황소개구리나 붉은 가재와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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