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兵役 검은 거래

  • 입력 1998년 6월 11일 19시 54분


징병검사에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아내거나 입대 후 이른바 편한 보직을 배정받기 위해 거액의 돈이 오고갔다는 보도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회의원과 대기업중역 변호사 등 사회지도층이 포함된 수백명이 자식의 편한 군대생활을 위해 거액을 바쳤다고 한다. 수사대상에 오른 병무담당자들은 5천만원부터 1억원까지 받으면 병역면제, 1백만원이면 좋은 주특기를 부여하는 것을 공정가격처럼 정해 수뢰했다는 것이다.

주범격인 육군 모병연락관은 뇌물 알선자들을 ‘단골손님’으로 관리했다니 병무청탁의 사회적 수요가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준다. 병무비리를 감시하라고 파견한 국방부 합조단 소속 헌병간부도 같은 혐의로 수배중이다. 전직 군수뇌의 동생과 고위장교까지 연루됐다는 것은 이런 비리구조가 국가기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고질 같은 병무비리지만 이번처럼 각계 지도층 다수가 연루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부정부패에 대한 공분(公憤)을 넘어 국민의 의무에서부터 비뚤어진 자식사랑까지 잘못된 사회풍토를 다시 짚어보게 하는 사건이다.

국가공동체에 대한 국민의 의무는 모두 중요하지만 병역은 특히 의미가 다르다. 납세 교육 근로의 의무는 각각 수혜자부담 원칙이나 능력에 따르는 것이지만 병역의 의무는 모든 국민이 거의 절대적 평등개념 아래 이행하게 돼 있다. 각 개인이 떳떳한 국민됨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해서 다른 가치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병역의무의 특징이다. 선진사회에서 지도층일수록 앞장서서 군입대를 자원하는 것은 그런 기간계층이 나라의 주인임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역을 돈으로 거래한 지도층이라면 공동체주인의 대열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다.

군대생활이야말로 공동체의 용광로에 해당한다고 할 만하다. 국민 2세가 어우러져 땀과 기율(紀律)을 통해 일체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병역의무 기간이다. 그 일체화과정을 통해 빈부와 교육의 차이를 넘어선 국민통합의 기반도 조성된다. 그런 점에서 병역의 검은 거래는 자식교육뿐만 아니라 국민통합까지 망친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남북이 군사적으로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현실에서 현역 군인들이 군부대와 병무청에 숨어 돈을 받고 병역을 거래했다니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평등과 공정성이 생명인 병무행정은 투명해야 한다. 병역의무의 공정성이 돈으로 훼손된데 대한 국민공분은 새삼스레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가증스러운 반(反)공동체적 병무비리를 군과 함께 민원행정 개혁차원에서 발본색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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