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광운/한국인권과 「범죄인 인도조약」

  • 입력 1998년 6월 10일 19시 44분


영국 출신의 로널드 비그는 강도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도였다. 그는 35년 전인 1963년경 글래스고에서 런던으로 가던 열차에서 무려 5천만달러를 털어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그가 세계적인 명사가 된 것은 그 뒤부터다.

비그는 30년의 실형 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복역하다 탈옥한 뒤 유유히 영국을 떠나 브라질에서 도피 생활을 하였다.

그곳에서 ‘멋진 사내’로 환대받으며 살았다니 인생유전도 이만큼 부침이 심한 경우는 없을 것 같다.

무려 34년간 도피생활을 하던 그는 97년 8월경 영국과 브라질 사이에 범죄인 인도 조약이 발표되어 영국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 마음이 감옥이었다”며 도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한다.

미국에서 로널드 비그처럼 ‘멋진 인사’로 환대받으면서도 마음이 감옥같은 수많은 한국인 범죄자가 이번에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강제 송환될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이 뒤늦게 체결된 배경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남다른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국과 미국은 심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왕래가 잦은 나라이면서도 어째서 범죄인 인도협정이 이제서야 체결되었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동안 실무자들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에 협상을 어렵게 했던 쟁점 중 하나가 범죄인 인도 조약의 적용 대상에 인권 문제와 관련이 깊은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였다.

미국이 줄곧 명문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포함시키지 말자고 주장해 한국 정부와 대립했던 것인데 ‘국민의 정부’가 새로 출범하면서 종전의 주장을 철회하고 비로소 이 조약 체결에 합의하였다.

97년 1월경 미 국무부는 매년 발간하는 인권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전체적으로 자국 시민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 및 기본적인 사안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범죄인 인도조약 협상이 지지부진했었는데 이번에 상호간의 입장 변화로 큰 어려움 없이 합의를 보게 되었다.

정치범으로 박해받아온 김대중대통령이 앞으로 과거 정부처럼 국가보안법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에 깔고 이뤄진 것이 바로 이번 범죄인 인도 조약이다.

그러므로 이번 협정은 미국이 인권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의 정부’에 공식적으로 신뢰의 메시지를 주었다는 점에서 선물이다.

미국의 하버드대에는 세계 언론인을 연수시키는 니만 펠로 제도가 있다.

박정희정권 이래 수십년간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 대한민국의 언론인을 초청하지 않다가 태도를 바꾼 것도 불과 수년 전이다. 이번 범죄 인도조약 체결은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협정에 합의하기는 했으나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도피자들이 당장 인도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양국의 비준이 연말이나 내년초로 예상되고 절차상 범죄자들이 미국 사법기관에 인도 여부 심사를 요청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연내에 오든, 내년에 오든 그것은 또다른 문제다.

그보다는 한번 죄를 지으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법적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데 이 조약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생활이 윤택해도 ‘마음이 감옥’인 수많은 도피자가 이 협정으로 생활도 감옥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손광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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