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길을 가는 메뚜기」/삽화 분위기 독특

  • 입력 1998년 4월 28일 06시 46분


▼ 「길을 가는 메뚜기」/아놀드 로벨 지음

넓고 넓은 세상 구경에 나선 메뚜기. 어느날 메뚜기는 길 한가운데에 있는 물웅덩이에 이르렀어요. 메뚜기는 웅덩이를 훌쩍 뛰어 넘으려고 했지요.

그때 “잠깐!” 하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물웅덩이 가장자리에서 모기 한 마리가 외치는 소리였어요. 모기는 작은 배에 앉아 있었지요. “이건 규칙이야! 이 호수를 건너려면 반드시 이 나룻배로 건너야 해.” 모기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모기 선생님. 전 훌쩍 뛰어넘을 수가 있는 걸요” 하고 메뚜기가 볼멘 소리로 말했어요.

“규칙은 규칙이야. 어서 이 나룻배에 타라구.” “그 나룻배는 너무 작아요.”

“규칙은 규칙이야. 너는 반드시 이 나룻배를 타야 해!” “저는 그 나룻배에 안 맞아요.”

“어쨌든 규칙은 규칙이야” 하고 모기는 계속 외쳤지요.

“그렇다면, 한가지 방법이 있기는 해요.” 메뚜기는 나룻배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모기는 신이 나서 소리쳤어요. “여러분 출발합니다!” 메뚜기는나룻배를 아주 조심스럽게 들고 웅덩이로 걸어 들어갔지요.

“너는 참 행운아야. 나하고 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하고 모기가 말했어요. 모기는 계속 떠들었어요. “나는 오랫동안 이 호수에서 항해를 해왔지. 폭풍도 파도도 난 두렵지 않아.”

메뚜기는 한 발 더 내디뎠어요. “나는 이 주위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항해에 관해 잘 안다구.” 메뚜기는 또 다른 한 발을 내디뎠어요. 메뚜기는 어느새 물웅덩이 건너편에 와 있었어요. 메뚜기는 나룻배를 물에 내려 놓았어요. 모기가 말했어요.

“아주 멋진 여행이었어. 이제 서둘러서 저쪽 물가로 가야지. 새로운 승객을 맞으러 말이야….”

미국 동화작가 아놀드 로벨의 ‘길을 가는 메뚜기’(비룡소).

‘꽉 닫힌’ 어른들의 세계와 ‘확 트인’ 어린이들의 세계를 우의적(寓意的)으로 빗댔다. 메뚜기가 여행에서 차례차례 만나게 되는 딱정벌레 사과벌레 파리 모기 나비 잠자리 등등. 이들 곤충과 짧은 만남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는 어른들을 풍자한다.

작가가 직접 그린, 햇살처럼 빛나고 아침이슬처럼 영롱한 삽화. 펜에 잉크를 묻혀 그린 섬세한 그림에 수채물감을 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아이들의 미래가 그럴까.

초등학교 1, 2학년용. 하지만 외려, 어른들에게 더 읽히고 싶기도 한 동화. 아기자기한 이야기 속에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은 로벨의 동화. 읽어도 읽어도 새록새록 맛이 우러난다.

…, 이번에는 위잉,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잠자리 두 마리가 나타났어요.

“메뚜기, 너 참 안됐구나. 우리는 빠르게 날아다니는데 너는 걷기만 하잖아. 참 안된 일이야.” “뭐가 안 된 일이니! 나는 걷는 걸 좋아하는데.”

잠자리들은 메뚜기 머리 위로 이리저리 날아다녔어요. “우리는 여기 위에 있는 것들을 많이많이 볼 수 있어. 네가 볼 수 있는 건 모조리 길에 있는 것뿐이잖아.”

“난 이 길이 좋아. 그리고 나는 길을 따라 피어난 꽃들을 볼 수가 있단다”하고 메뚜기가 말했어요. “우리는 붕붕거리고 윙윙거리지. 우리는 꽃을 볼 시간이 없어” 하고 첫번째 잠자리가 말했어요.

“나는 움직이는 나뭇잎들을 볼 수가 있단다.” “우리는 빙빙 돌고 뱅뱅 돌지. 우리는 나뭇잎들을 볼 시간이 없어” 하고 두 번째 잠자리가 말했어요.

“나는 산 위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단다.” “지는 해가 어떤데? 산이 어떤데? 우리는 획 내려왔다가 획 올라가지.우리는 지는 해와 산들을 볼 시간이 없어.”

위이이이잉! 잠자리 두 마리는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어요.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어요. 하늘이 어두워졌어요. 메뚜기는 땅 위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았어요. 메뚜기는 돋아나는 별들을 보았어요. 메뚜기는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정말로 행복했어요.

메뚜기는 피곤했어요. 폭신폭신한 자리에 누웠지요. 메뚜기는 알았어요.

아침이면 길이 여전히 있고, 길을 따라 가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이기우기자〉

▼ 전문가 의견 ▼

작가는 메뚜기 이야기를 통해서 달리 하려는 말이 없다. 아무것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서투른 아기의 몸짓을 따라가듯 쓰여진 텍스트와 더없이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려진 그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것은 느린 생동감, 즐거움, 따스함, 그리고 믿음이다. 메뚜기의 이야기와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아이를 바라다 보고 있을 때처럼 마음이 온화해지면서 얼굴에 빙긋 웃음이 뜬다.

최윤정<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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