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안기부의 과거단절

  • 입력 1998년 4월 27일 19시 56분


동서고금의 소설가 중 필명을 가장 많이 가졌던 사람은 스탕달일 것이다. 스탕달의 필명은 1백개가 넘었다. 비평가들은 본명이 앙리 베일인 그의 필명애용이 아버지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외지를 여행할 때 자신의 정신적 보금자리가 거기에 있음을 느꼈다. ‘출생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했다는 것이다. 이 자유를 위한 그의 이름바꾸기는 이름이 나타내는 정체성(正體性)을 설명해 준다.

▼안기부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새 이름은 국가정보원.영문명칭도과거 중앙정보부 때부터썼던 Agency 대신 Service로 했다. ‘남산’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중정이나 안기부는 검찰 경찰에서는 A로 불렸다. 안기부가 권위주의를 연상시킨다면 이름 자체보다 그 족적 때문이다. 그 기관의 발자취가 만들어 놓은 정체성이다.안기부의 명칭변경은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희구하는 것이다.

▼안기부는 또 부훈(部訓)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기로 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지금의 부훈은 61년5월 중정 창설 당시 김종필(金鍾泌)초대부장이 주도해 정한 것이다. 프랑스 정보기관의 ‘음지에서는 엄격하고 양지에서는 명철하게’가 이와 비슷하다. ‘음지’가 음습한 이미지를 준다는 지적이지만 기관의 족적에 따라 다르다. 부훈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 CIA라면 베트남의 고딘디엠과 니카라과의 아옌데 암살을 떠올린다. 76년 엔테베 인질구출의 신화는 이스라엘의 모사드에 붙여진 영예다. 프랑스 대외보안총국은 85년 핵실험 항의차 가던 그린피스 선박폭파로 국제적 물의를 빚었다. 우리의 중정과 안기부는 69년 3선개헌, 72년 유신 등 고비마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최근에는 북풍공작 혐의로 얼룩졌다. 그 이름바꾸기가 과거와의 진정한 단절이 돼야 새 국가정보원이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재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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