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주 남산]계곡마다 부처 능선곳곳 석탑

  • 입력 1998년 4월 2일 07시 29분


‘부처님의 나라 미륵의 땅’ 경주 남산.

경주 도심 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거북모양으로 누워있다. 남북 12㎞, 동서 4㎞, 해발 4백94m. 산전체가 국보급 보물로 가득찬 야외박물관이다. 7세기초∼10세기초 불국토(佛國土)를 이루려던 신라인의 의지와 이상이 담겨있다. 계곡과 능선마다 절터 1백27곳, 불상 87체, 석탑 71개가 즐비하며 사찰 비석 묘지 등 불교유물유적만도 4백22개에 이른다. 이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도 22점.

골짜기 이름도 ‘부처골’ ‘탑골’ ‘용장사골’ ‘열반골’ 등 그야말로 부처님 나라다. 남산을 제대로 훑으려면 이틀은 족히 걸린다. 순례코스만도 일흔가지가 넘는다. 이 중 유적들이 몰려있는 삼릉골∼용장골 코스는 하루 여유밖에 없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냉골이라고도 불리는 삼릉골을 따라 오르다 맨처음 만나는 목 없는 석불좌상. 편안한 자세, 기백 넘치는 가슴, 넓은 어깨가 신라전성기(8세기중엽) 때 위풍당당한 불상이다.

왼쪽 길로 40여m 올라가니 높이 솟은 자연석 기둥에서 마애관세음보살이 속세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여중생의 키만할까, 화강암 색깔을 그대로 살려 붉게 채색한 듯한 입술, 환희 가득한 눈, 발가락 끝까지 피가 도는듯 따스한 촉감을 불러 일으킨다.

5백m 위로는 이웃집 머슴처럼 입술두꺼운 석가여래가 바위에서 웃고 있다. 계곡을 타고 내려가 숲속에서 만난 아미타여래좌상은 웅장한 뒷모습과 달리 앞 얼굴이 애처롭다. 일제 때 보수를 하며 코 아래를 시멘트로 발라놓았고 코마저 누군가가 떼어냈다.

산등을 타고 굽이굽이 3백m가량 오르니 큰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있는 마애여래대좌불. 얼굴만 사실적으로 조각해놓고 옷주름 손발은 부피 없는 선으로만 그려져있다. 부처님이 바위속 휘장을 걷고 막 얼굴을 내미는 듯하다.

산정상 너머 용장골에서 만나는 삼층석탑은 4.5m 작은 탑이지만 큰 바위 위에 곧바로 탑을 올려 멀리서 보면 산 자체가 산 밑을 기단으로 세운 웅장한 탑으로 보인다. 땀 흘리며 바위등성이로 기어올라가 마주서면 ‘지금 오느냐’고 반갑게 맞아주는듯 훤칠한 마애석가여래좌상, 신라인들이 탑돌이를 할 때마다 머리가 따라 돌았다는 전설이 담긴 삼륜대좌불 등…. 산행길 마다마다에 부처가 웃고 있어 합장한 손을 내릴 틈이 없다.

남산에는 허투루 굴러다니는 부서진 기왓장, 돌조각도 예사롭지 않다.

‘살아있는 신라인’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의 산증인 윤경렬옹(84)은 “신라사람들은 남산의 바위를 쪼아 부처님을 만든 게 아니라 바위 속에 숨어있는 부처님을 찾아 드러낸 것”이라며 “그들은 극락세상이 이 땅에 이뤄지기를 빌며 남산의 산과 바위를 온통 부처님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전했다.

〈경주남산〓허문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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