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행권,「신규 협조융자」거부 움직임

  • 입력 1998년 3월 19일 18시 28분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협조융자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은행권들이 신규 협조융자 요청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협조융자는 일시적인 운전자금 부족을 겪고 있는 건실한 기업을 채권단이 모여 지원하는 제도.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후 ‘재벌부도는 안된다’는 정치권의 집착이 금융권을 압박, 변변한 여신심사도 없이 부실대기업을 지원하는데 남용됐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한화 해태 뉴코아 등 10개 그룹, 2조원에 달할 정도로 러시를 이루던 협조융자가 이달 들어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은행들은 뭉칫돈을 지원하던 기존의 무모한 협조융자보다는 수입대금 대지급을 일반대출로 전환해주거나 회생가능한 계열사에만 이자를 유예하는 등 선별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최근 해태그룹으로부터 1천억원의 협조융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조흥은행측은 “채권은행단 회의를 열어 논의해 봐야겠지만 해태그룹의 장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금융기관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대신에 해태전자 등 회생가능한 계열사에 대해 일부 이자를 유예해 주거나 빌려준 돈을 출자로 전환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최근 효성그룹으로부터 2천여억원의 협조융자 요청을 받은 한일은행은 행장 등 최고경영진 선에서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은행은 대신 독일에 매각한 효성바스프 매각대금이 유입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5백50억원만을 지원(브리지론)해 줄 방침이었으나 대금이 예상보다 일찍 들어와 그마저도 지원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

제일은행 등 신호그룹 채권금융단은 19일 신호에 원자재수입대금 5백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채권단측은 “이번 지원은 정부의 특별신용보증제도에 따른 것으로 사실상 정부의 지급보증이 있는 상태”라며 “기존 협조융자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생가능한 기업만 지원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협조융자가 이뤄진다면 기업과 금융기관이 함께 망할 수 있다”며 종전방식의 협조융자 거부방침을 거듭 밝혔다.

은행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정부와 정치권이 협조융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태준(朴泰俊)자민련 총재는 18일 “협조융자는 한계기업의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하는 효과밖에 없다”고 지적했으며 이에 앞서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은 15일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협조융자는 금지돼야 한다”고 못박았던 것.

한편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쥔 이상 협조융자 여부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일”이라며 “회생가능한 기업에 협조융자를 하고 재무구조 약정을 통해 자구계획 이행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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