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 박칼린

  • 입력 1998년 3월 12일 08시 19분


신들린 듯 공간을 가로지르는 지휘봉. 그 지휘봉아래 선 여류지휘자의 모습이 정열적이고 아름답다.

박칼린(31).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

“한가지 일로는 만족할 수 없어요. 여러 일에 열중하며 ‘온몸의 세포’에 자극을 줄 때 비로소 산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오케스트라 지휘뿐만 아니라 새 출연진을 연습시키고 악보를 고쳐나가는 일도 그의 몫. 95년 첫공연때는 미국인 존탁부인 역을 맡기도 했다.

“일인다역(一人多役)이 체질인가 봐요. 일감이 많은 뮤지컬 무대를 사랑하죠.” 1백72㎝의 큰 키이지만 웃음은 아이처럼 천진하다.

그의 운명은 어릴 적 준비됐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미국에서 첼로를 공부하던 초등학교 5학년때, 선생님이 작은 뮤지컬을 만들어 칼린 등 두 아이에게 반주를 맡겼다. 유심히 살펴보던 선생님이 그를 불렀다. “배역 다섯개를 새로 만들었어. 너라면 잘할 것 같아서.”

칼린은 반주까지 일인6역(六役)으로 변신해 가며 공연을 했다. 그 작은 공연은 뮤지컬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남겼다.

부산에서 여고를 나온 뒤 다시 미국행. 캘리포니아 예술종합대에서 작곡과 첼로를 연마했다. 친구들과 만든 밴드에서는 재즈와 인도음악, 우리 국악기가 하나로 어울렸다. 다시 돌아와서는 서울대 대학원 국악작곡과에 다니며 연극판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재능과 ‘끼’를 눈여겨본 연출가 윤호진(극단 에이콤 대표)이 그를 뮤지컬로 끌어들였다. ‘명성황후’의 성공은 그에게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왕성한 일욕심은 뮤지컬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명훈이 지휘한 ‘세계를 위한 찬송’음반에서 그는 바리톤 고성현과 함께 멋진 노래솜씨를 선보였다. TV 단막드라마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고 음반기획에도 손을 대 첼리스트 정명화의 ‘한 꿈 그리움’같은 회심작을 만들기도 했다.

“집안 대대로 신기(神氣)가 흐르고 있었답니다. 외가쪽도 초능력이 이어져 왔다고 하죠.” 쉴새없이 일에 뛰어드는 것으로 핏줄에 흐르는 신기를 해소한다는 자기분석이다. 그 신기 때문일까.명성황후 공연중에는 칼린 자신을 포함, 관계자 여럿이 황후의 혼령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불을 모두 끄고 황후의 아리아를 불러 혼백을 달랬다.

그의 이상은 무엇일까. “뮤지컬은 종합예술이지만 한계가 많아요. 인체가 가진 속도감의 한계가 있지요. 게다가 무대가 아무리 입체더라도 관객에게는 평면에 불과해요. 무대의 한계를 넘어야 해요.”

바그너와 같은 대예술가가 가졌던 초월예술에의 꿈이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극장이 필요하죠.” 엄숙하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 웃음기가 없다.

“어린시절, 저희 세 자매는 용모때문에 많은 놀림을 당했죠. 그때마다 부모님은 ‘너희는 살면서 두배로 힘들겠지만 두배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박칼린에게는 그런 자신감이 살아 넘친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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