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제적 위기 「불감증」

  • 입력 1998년 3월 6일 20시 11분


경제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 위기극복 의지는 급속도로 이완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는 현재 한국은 외환부족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을 뿐이며 본격적인 불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경고했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도 한국의 외환위기 고통은 정작 올 여름부터 본격화할 것이며 신용평가등급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회복되는 것은 2∼3년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의 한국경제 전망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의 유동성 위기가 경제위기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킨지보고서는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2단계 위기국면이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총체적 금융위기에 봉착하면서 금융기관과 주요기업의 연쇄부도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본격적인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것도 이때다.

이 시기를 어렵사리 넘긴다 해도 한국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니다. 3단계 조정국면을 거쳐야 한다. 이 시기는 2∼5년 정도 예상되지만 경제체질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각종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다면 경기침체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IMF체제 극복은 요원해진다는 얘기다.

매킨지나 무디스 등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당장 발등의 불인 외환위기마저 극복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당국은 ‘3월 대란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외국 투자자들이나 금융기관들은 그같은 우려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환율이 계속 불안하면 중국 위안(元)화의 평가절하 가능성도 더 커진다.

외국자본의 한국투자가 주춤거리고 홍콩금융시장에 내놓은 국채가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것도 한국의 위기극복 의지와 노력에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총체적 위기 불감증에 빠져들고 있다. 정치권은 지금과 같은 힘겨루기와 정국불안이 대외신인도 회복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개혁의 첫 단추인 정부조직개편이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가운데 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도 마냥 미적거리고 있다. 일부 국민도 벌써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이는 사태의 본질과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고 개혁을 유도해 나갈 전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침내 외국인들마저 따가운 충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주한 일본경제인들은 한국의 개혁이 말뿐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다른 외국투자자들도 한국인들은 너무 빨리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아냥댄다. 이래가지고는 국난극복은 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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