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기, 이제 시작일 뿐

  • 입력 1998년 2월 28일 19시 43분


산업활동이 가파른 속도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난 1월 실업자수가 한달새 27만명이나 늘어 93만명을 넘어서고 실업률이 4.5%에 이르렀다. 제조업 가동률도 70% 아래로 떨어지고 부도기업은 3천3백개사를 넘어섰다. 경제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중 산업동향 통계는 모든 분야에 걸쳐 일제히 기록을 깨고 있다.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달에 비해 10.3%나 줄어 지난 5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60%대로 내려서기는 통계조사가 시작된 71년 이후 처음이다. 내수용 소비재 출하와 도소매 판매액도 크게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투자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국내 기계수주는 물론 기계류 수입도 47.3%나 감소했다. 국내 건설수주가 한달 전에 비해 75%나 줄어드는 추세로는 가까운 시일내에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24년여만에 처음으로 한달사이 3%포인트나 내려선 경기 선행지수가 경제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이 정도의 경제위축으로도 이미 심각한 규모의 대량실업이 일어나고 있다. 취업자수가 1년전에 비해 68만6천명이나 줄고 실업자수가 벌써 1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동안 다른 분야의 실업을 흡수하던 서비스분야마저 84년 이후 처음으로 30만명 가까운 실업자가 생겼다는 것은 어디에도 발붙일 틈이 없어져간다는 의미다. 삶의 기반이 모두 무너지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와 고통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통계청 경기선행지표는 겨우 7개월 예고다. 그나마 1월의 실물동향을 기초로 한 예측이다. 진짜 불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국제 컨설팅회사의 예고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IMF위기 1단계인 유동성위기조차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이 고비를 넘겨도 길게는 1년반까지 계속될 2단계의 본격적인 경기침체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다. 올해 실업자수가 1백20만명에 이르리라는 예측은 어쩌면 너무 낙관적일지 모른다. 앞으로 닥쳐올 본격적인 경기침체기에 정리해고제 도입과 겹쳐 대량실업이 병행될 경우 실업자수는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IMF충격 겨우 두달만에 거리마다 차량이 다시 늘고 있다는 것은 기이하다. 정치권은 구태의연한 힘겨루기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사태에 책임이 큰 정책당국이나 재계도 늑장부리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위기불감증이다. 사태는 예상보다 심각하고 급박하게 악화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을 바로 보고 모두 함께 극복의지를 다시 가다듬는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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