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3·1정신

  • 입력 1998년 2월 28일 19시 43분


“근자(近者) 아(我)반도에 하(何)회사니 모(某)은행이니 하여 각기 설립됨이 우후순(雨後筍)과 여(如)하도다.” 1920년4월22일자 본보에 실린 경제기사의 한 토막이다. 당시 한반도의 회사 은행 설립 붐을 ‘비 온 뒤에 돋아나는 죽순’에 비유하고 있다. 기사는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회사설립과 은행열(熱)… 천원만 유(有)하여도 회사설립 출원이며 만원만 유하여도 은행설립 계획이로다”라고 이어지면서 3·1운동이 촉발한 경제적 민족독립운동의 열기를 전해주고 있다.

▼당시 고등경찰 비밀문서(1919년11월) 중에는 “선인(鮮人)의 기업열이 현저하게 발흥하고 상회명의를 붙여 주식모집을 꾀하는 자가 대단히 많다. 그들의 경향은 일본인에 대항하여 경제상으로 압박을 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경남도지사의 보고도 보인다. 기업설립 붐은 경성방직처럼 서울에서 크게 일기도 했지만 함양의 삼일산업, 창원의 마산은행처럼 지방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3·1운동은 흔히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란 측면이 부각돼 정치적 사건으로만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3·1운동은 민족정신을 크게 일깨워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민족기업설립을 비롯해 물산장려 소비절약 등 일제하 각종 경제독립운동의 시원이 3·1운동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제주권의 상실을 뜻하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와 새 정부 출범을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한 탓인지 79주년 3·1절을 맞아도 기념식이 고작일 뿐 그 의미를 되새기는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TV의 경우도 다큐멘터리 두편이 고작이다. 79년 전 나라를 살리기 위해 민족의 선열들이 토해낸 뜨거운 함성의 의미를 되새기며 3·1정신에서 국난극복의 예지를 찾아야 할 때다.

〈임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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