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⑦]孤魂서린 「알라에 공동묘지」

  • 입력 1998년 2월 24일 19시 51분


하와이제도중 최남단에 위치한 빅 아일랜드의 동쪽편에 있는 힐로시. 힐로공항을 뒤로 한 채 차를 몰아 10분 남짓 거슬러 올라가면 산능선 왼쪽으로 수백기(基)의 묘비가 눈에 나타난다. ‘알라에 공동묘지.’ 산 중간능선 6백여평을 가로지른 알라에 공동묘지는 멀리 광활한 태평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지역 사탕수수 농장에서 젊음을 불사른 한인노동자들을 비롯해 일본인 필리핀인 등 하와이 이민자들의 ‘고혼(孤魂)’이 서려 있는 곳. 한많은 일생을 마감한 한인 이민1세대들이 하와이에서 집단적으로 묻혀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공동묘지 입구를 지나 가지런히 펼쳐진 일본 이민1세대의 묘역을 뒤로 하면 한인 묘역이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서면 낯익은 고어체(古語體) 한글이 눈에 띈다. ‘최준경 68세, 大韓京城府居, 1954년4월30일 별세’‘최션옥 75세 大韓 경샹도부산거(居)’ 등등. 비뚤비뚤한 글씨이지만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당시 농장생활의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듯한 정감이 서려 있다. 지금쯤 그들은 땅밑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공동묘지 앞으로 탁 트인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끝내 밟지 못한 고향 생각에 아직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 묻혀 있는 한인 1세대의 묘는 모두 1백55기. 그러나 묘지 곳곳은 이들의 애끓는 영혼을 달래기보다 후손들의 무심함을 비웃는 듯했다. 수십년간 방치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관 덮개로 쓰인 석판이 갈라져 틈이 보이는 무덤. 묘비밑 흙이 파헤쳐져 밑둥이 보일 만큼 기울어진 것. 들쭉날쭉 무성해져버린 잡초로 뒤덮인 어떤 묘…. 일부 후손들이 다녀간 곳은 화병(花甁)속에 이젠 바래진 꽃들이 놓여 있기도 했지만 극히 일부에 그쳤다. 94년에 미국 뉴욕에서 이곳에 옮겨와 작품활동을 하면서 교민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용씨(45·화가)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깨진 묘역을 보수하고 비석을 바로 세우는 등 전체적인 보수비용은 10만달러 정도가 소요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아직 선뜻 나서는 독지가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는 게 이회장의 설명이다. <호놀룰루·힐로(하와이)∥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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