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종의 건강바로잡기④]사회계층과 스트레스

  • 입력 1998년 2월 12일 19시 35분


지위에 따라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나 깊이가 다르겠지만 대체로 아랫 사람이 윗사람으로 부터 잔소리를 듣거나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로버트 사폴스키박사팀은 사회계급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에서 6년간 원숭이사회를 연구했다. 그 결과 원숭이사회도 인간사회와 마찬가지로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원숭이가 지배적 위치에 있는 원숭이의 눈치를 보고 음식이나 쉴 자리도 양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하층 원숭이들은 암놈과의 성교 기회마저 지배계급에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원숭이들의 코티졸(스트레스 호르몬)을 측정해 봤다.그랬더니 하급 원숭이들은 예외없이 상급 원숭이들보다 40% 이상 호르몬 수치가 높았다. 이와 함께 부신(副腎)도 더 커져 있었다. 86년에 조사한 수치는 낮은 계급의 원숭이들이 높은 계급의 원숭이들보다 호르몬 수치가 두 배나 높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스트레스 호르몬의 증가가 신체적 원인이 아니라 정신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뇌의 시상하부에서 나오는 코티졸촉진제 분비인자(CRF)의 양이 많아진다. 조사 결과 하급 원숭이는 상급 원숭이보다 훨씬 많은 CRF를 분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하급 원숭이들의 코티졸 양이 항상 높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낮은 계층, 혹은 직급이 낮은 사람들은 항상 만성스트레스 영향권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과(過)코티졸증세는 심리사회학 연구에서 중요한 설명도구가 되어 있다. 또 사람도 만성스트레스형 우울증환자의 코티졸 수치가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로 입증된 사실이다. 사폴스키박사의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서열이 잘 바뀌지 않는 안정된계급사회에서는 하급 원숭이들의 코티졸 수치가 더 높다는 점. 말하자면 ‘혁명’이 없는 계급사회에서는 낮은 계급들이 더 높은 만성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연구팀은 하급 원숭이들이 △과코티졸증세와 관련이 있는 동맥경화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증가 △면역세포 격감으로 병에 더많이 걸리거나 일찍 사망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IMF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저소득 계층의 고통이 훨씬 더심하지 않을까. 강성종(전 뉴욕 마운트사이나이의대 교수·미국 바이오다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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