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거꾸로 가는 방송개혁

  • 입력 1998년 2월 9일 20시 15분


방송이 정치권력 등 외부의 통제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방송의 공익성 증대는 물론 민주사회 정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권력층이 예외없이 방송을 ‘장악’하려 한 것은 방송의 막강한 영향력을 정권유지에 이용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방송계에서는 이번에야말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오랜 숙원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차기정부가 전부터 이 문제를 공언해온데다 정부조직 개편에서도 그런 의지가 구체화되면서 기대를 더욱 부풀게 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의 움직임은 이를 낙관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방송이 독립성을 지니려면 먼저 방송 인허가업무를 포함한 방송행정이 민간차원의 독립기구로 넘어가야 한다. 정부가 방송행정에 관여하는 한 권력의 ‘입김’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개편에서 현 공보처의 방송행정 업무를 민간기구인 방송위원회에 넘기기로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조치다. 그러나 이 개편안을 심의할 국회 문체공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 개편안에 반대입장을 보여 원안통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특히 국민회의 소속 의원들이 방송행정 업무를 독립기관에 넘기지 말고 문화부쪽으로 넘길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은 예상밖의 일이다. 이것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지난 대통령선거 이전에 발표한 방송개혁 공약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방송을 계속 정치권의 영향 아래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 되자 생각이 달라진 것일까. 방송업무가 문화부로 넘어간다면 과거의 ‘악명높은’ 문화공보부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방송행정을 전담하는 나라는 드물다. 세계적으로 방송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은 전파배정 업무를 맡는 정도에 그친다. 우리는 공보처가 광고시간과 프로그램편성 등 방송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이 구조적으로 권력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우리 방송의 후진적 틀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다시 없는 좋은 기회다. 방송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고 21세기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영상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방송의 독립성 확보는 필요하다. 다만 방송위원회에 방송행정 업무가 넘어갈 경우 방송위원회가 얼마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별개의 숙제로 남는다. 이 문제는 사회 각계의 폭넓은 참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국회가 통합방송법 제정작업을 벌이고 있으므로 정치권은 ‘방송지배’가 아니라 ‘방송독립’에 합당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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