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석한/무역대표부 반드시 신설해야

  • 입력 1998년 1월 22일 19시 46분


최근 우리 나라의 통상정책 수립과 조정업무를 어느 부처가 맡아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독립적인 무역대표부를 신설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필자는 15년간 미국에서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통상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한미 양국간 통상관계를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한국 정부 안에 통상협상 권한이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어 협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 일관된 창구 없으면 불리 ▼ 구체적으로 말해 지금과 같은 통상정책 결정 시스템 하에서는 △부처간 조정이 어렵고 △무역정책에 일관성이 없으며 △통상문제를 다루는 노하우를 축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상마찰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역대표부 신설이 시급한 과제다. 현재 외무부 통상산업부 재정경제원 등 여러 부처가 통상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이들 부처는 나름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각자 별도의 통상정책을 입안한다. 이들 부처가 다루는 문제들은 상호보완적이거나 서로 관련이 깊기 때문에 같은 협상테이블에서 다뤄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각 부처들이 각자 맡은 분야의 문제를 독립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종종 다른 부처와 어느 부분에서 견해가 일치되는지 알기 힘들다. 결국 협상의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부처들의 견해를 수집하고 총괄하는 중심부처로서 무역대표부를 신설한다면 한국은 보다 종합적으로 통상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역대표부가 통상에 관한 각 부처의 입장을 모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보다 효율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역대표부는 통상정책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밝히는 직접적인 책임을 지기 때문에 한국은 일관된 입장에서 통상문제를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외국 정부는 비로소 협상테이블에서 무역대표부와 합의한 사항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무역대표부를 통해 생기는 또다른 이익은 통상협상에 대한 전문기술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효과적인 통상협상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이런 전문기술은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정부관리들이 다른 많은 업무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통상문제에만 신경을 쓸 수 없다. 무역협상에 필요한 전반적인 기술도, 세부적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도 쌓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무역대표부를 신설하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무역분쟁에 대처할 수 있다. 지금은 통상마찰에 일차적인 책임을 지는 창구가 없다. 외국 입장에서 보면 통상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느 부처와 협의를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도 무역분쟁에 휘말린 민간업체들은 정부의 어느 부처가 주도권을 잡을지 예상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통상문제가 제대로 처리되기 어렵다. 결국 한국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문제가 위기수준까지 이르러서야 누군가 책임을 지고 나서는 것이 현실이다. ▼ 한국의 장기적 이익에 도움 ▼ 무역대표부 신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협상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통상압력도 분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 우리 나라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제 통상정책이 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의미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해외 수출시장을 넓혀 나가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지금 우리는 역사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특별한 기회 앞에서 과거의 전철을 밟기보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낫다. 그것이 오히려 한국의 장기적인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김석한(美 에이킨컴프법률사무소 수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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