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30%」들의 고통

  • 입력 1998년 1월 16일 20시 13분


금융대란에 휩싸인 동아시아 각국은 요즘 다투어 긴축 내핍체제로 돌입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지난주 전국 TV방송을 통해 가능한 한 모든 해외자산을 팔아 국내 중앙은행에 달러로 예치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홍차에 두개씩 넣던 각설탕을 한개로 줄이고 가정마다 채소를 가꾸자는 재무장관의 권고에 따라 심지어 전국 35개 교도소까지 자투리땅에 채소를 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금모으기에 이어 태국정부도 최근 금모으기 캠페인을 선언했다. ▼선택여지 없는「국가적 재앙」▼ 수입해 먹던 채소를 직접 가꾸고 각설탕을 한개로 줄인다면 그만큼 외화는 절약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적 일체감 형성이라는 상징적 효과가 더 크다고 외신은 전한다. 말하자면 내핍에의 동참이자 고통분담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실직의 공포가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새 집권당의 ‘30%희생, 70%회생’론에서도 나타나듯 우리처럼 30%의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면 이는 국가적 재앙이다. 미국식 정리해고제 도입은 지금까지의 생애고용개념에서 사실상 경영자에 의한 해고의 자유로 고용체제가 전면 수정된다는 의미다. 노동3권은 유명무실해진다. ‘오늘로 해고’라는 종이 한장으로 어느날 갑자기 직장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없는 나라, 그것도 겨울이 있는 나라에서 최소한 1백만명 이상의 대량해고자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 잘못도 크지만 무분별하게 거품투자한 재벌의 책임은 묻지않고 왜 우리만 ‘고통전담’을 해야하느냐고 근로자들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국민전체의 고통의 양과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 그러지 않고는 국내산업의 구조조정도, 외국자본의 국내유치도, 외환위기의 완전한 해소나 경제의 빠른 회생도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 우리 모두의 고뇌와 아픔이 있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전투적 조합주의는 사태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 차기대통령의 경제고문은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면 매국노라는 소리를 들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거기에는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분담이라도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고통분담의 국민협약을 이끌어 내기 위한 기구가 노사정위원회다. 정리해고(노) 재벌개혁(사) 실업대책(정)이 역할분담 고통분담의 3대 원칙이다. 노사정위 구성 자체가 집단이기주의를 버리자는 것인데 거기서 또다시 집단간의 양보없는 충돌이 인다면 희망이 없다. 근로자의 이해를 구하려면 가진자 기득권자들이 더 많이 포기하고 더 큰 고통을 떠안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재벌기업들이 대오각성, 제살깎는 아픔으로 자기변신을 해야 한다. 경영의 국제표준화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번에도 한때의 위기모면이나 새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개혁시늉이라면 현정권에 대한 분노의 화살은 재벌쪽으로 향할지 모른다. 지난해 부실경영으로 망한 일본의 한 생명보험회사 고용사장은 고객에게 폐를 끼친 책임을 지고 사재(私財) 2천만엔(약 2억4천만원)을 내놓은 일이 있다. 우리 기업주들도 이 정도의 책임의식은 있어야 한다. ▼노사정委 결렬땐 파국▼ 실업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30%의 희생을 요구하려면 우리 모두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30%들이 일자리를 다시 얻을 때까지 나머지 70%가 먹여 살릴 각오를 하고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새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 일은 노사정위가 반드시 합의로 이끌어내야 할 핵심과제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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