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민병욱/한나라당이 재경원과 다른점

  • 입력 1998년 1월 12일 20시 22분


한나라당과 현정부의 재정경제원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기형적으로 덩치가 크다. 공룡(恐龍)이란 말까지 듣는다. 그러다보니 한쪽은 국회, 다른 쪽은 정부에서 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행사해 왔다. 덩치에 걸맞은 사고(思考)는 못하면서도 힘만 믿고 무작정 ‘밀어 붙이기’에 열중하다 결국 사고(事故)기관이 된 것도 닮았다. 나라의 위기에 둘 다 책임이 있고 국민 지탄을 받는 것도 같다. 왜 그런가. 둘은 모두 밀실(密室)에서 탄생했다. 한나라당은 90년 3당합당의 산물이다.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김종필(金鍾泌)씨의 ‘한지붕 세가족’동거 약속은 국민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국민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 권력을 나눠 갖기로 약속해 태어난 것이 한나라당 전신인 민자당이다. 출생이 떳떳지 못해서인가, 그후 이 거대정당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걸핏하면 날치기였고 모이기만 하면 집안싸움이었다. 재경원도 94년말 밀실에서 잉태됐다. 당시 민자당이 기상천외하게 ‘지방기자실에서 정기국회 본회의’를 열어 95년 예산안을 날치기한 다음날 김영삼대통령은 ‘재경원’이 곧 출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와 총리실 사람 대여섯명이, 그것도 남의 눈을 피해 10여일간 호텔에서 짜맞춘 정부조직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재정 금융 외환업무에 세출 세입 국고업무까지 한 곳에 모아주었다. 나라의 돈 관련 일은 다 맡았으니 이런 기관이 무서울 게 뭐 있었겠는가. 해온 일들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릴 정도가 아니라 모두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하고 만것이다. 닮은 점은 또 있다. 무리수만 남발하더니 결국 차입(借入)경영을 하게 된 것도 닮았다. 재경원이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을 받아 나라살림을 꾸리게 된 것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은 이미 오래전에 인재 ‘차입경영’을 시작했다. 96년 4.11총선을 치르려고 이회창(李會昌)씨 등을 영입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는 조순(趙淳)씨를 총재에 앉히고 3당합당의 주역으로 마지막까지 ‘박힌 돌’ 김영삼대통령을 밀어냈다. 대선 때 연수원을 담보로 사채시장에서 돈을 차입하려다 들통나 실패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나 재경원 모두 분열 또는 축소 위기에 몰린 것도 닮았다. 소속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같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재경원은 정부조직개편 대상 0순위다. 부총리가 관장하는 원(院)에서 부(部)로 축소되며 업무의 상당부분을 총리실에 뺏길 처지다. 한나라당은 언제 어떤 외풍이 불어 그 모양이 변할지 알 수 없다. 지도부의 갈등도 서서히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기관은 닮은 점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판이한 점도 많다. 재경원은 나라를 부도낼뻔했던 책임을 통감하고 원이 해체되기 전에 잘못의 일단이라도 씻어보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다르다. 50년만에 선거에서 패배한 첫 여당이 됐으면서도 아직 착각을 하고 있다. 여당 발목잡기 만이 야당체질인 양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요즘 한나라당의 행태는 이렇다. 건설적 대안 제시는 하지 않으면서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공공연히 낸다. 재벌의 체질을 개선해 보자니까 “그래서는 안된다”고 소리친다. 노사정(勞使政)고통분담을 요구하자 96년 노동관계법처리 때의 야당 대응을 들먹이며 “새 집권측이 사과하라”고 딴전이다. 정부조직을 바꾸는 일을 놓고 여야 없이 상의해 보자고 했더니 “그건 당신들의 일”이라며 외면한다. 당내 여론 수렴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중구난방으로 쏘아대는 말들이다. 한나라당의 협조없이 새 집권측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지금은 일을 되게 하는 게, 나라를 살리고 보는 게 급한 때다. 과거 야당의 가장 못된 부분이었던 ‘반대를 위한 반대’는 닮을 것이 아니다. 반대하려면 충분한 논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민병욱<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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