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수형/어느 변호사의 안타까운 죽음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29분


3일 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숨진 조경근(趙慶根·52)변호사의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이곳에 모여든 법조인들은 고인의 뜻대로 된다면 법조계도 훨씬 깨끗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변호사는 철저한 ‘제도권’ 변호사로 평생 어느 재야단체에도 속한 적이 없는 보수주의자였다. 검사로 출세가도를 달렸고 미국의 로펌(법률회사)에서 돈도 많이 벌었다. 94년에는 잠시 정무1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조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갑자기 변호사 자정운동에 나섬으로써 ‘운동권’변호사로 변신했다. 그는 ‘변호사 개혁모임’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서울지검을 방문해 변호사비리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변신은 법조계에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졌다. 급진적인 주장으로 법조계의 ‘이단자’로 불리는 30대와 40대 초반의 변호사들이 주류인 개혁모임에 50대 제도권 변호사가 나섰기 때문. 조변호사도 이를 의식하고 조심스럽게 처신했다. 그는 개혁모임 변호사들이 너무 앞질러 나가면 “조금씩 이뤄가자”며 만류했다. 대신 더 많은 변호사들이 개혁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개혁모임을 주도한 손광운(孫光雲)변호사는 “조변호사가 과거에 나도 잘못이 많았다”며 참여를 자청했다고 전했다. 법조인들은 그의 삶에는 ‘무시유종’(無始有終)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한다. 손변호사는 “제대로 살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죽기는 더욱 어렵다”며 “마지막에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조변호사의 죽음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5분 동안만 생각에 잠긴다면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수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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