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보완]지하자금 끌어내 돈흐름 숨통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국민회의와 자민련, 한나라당이 합의한 실명제 보완방안은 일단 자금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무기명 장기채권의 발행, 금융소득 종합과세 유예 등은 30조원으로 추산되는 지하자금의 숨통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거래 비밀보장의 강화도 심리적 안정효과가 있어 그만큼 자금흐름을 유연하게 할 전망이다. 실명제 반대론자들은 이번 대책이 통화량을 전혀 늘리지 않고 금리를 몇%포인트 내리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물론 무기명 장기채권을 어떤 조건으로 발행하느냐에 따라 지하자금 흡수효과는 큰 차이가 나게 마련. 예컨대 상속증여세 탈세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10년간 무이자로 3개월간 시한부로 발행한다면 이를 통해 흡수할 수 있는 자금규모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3조원 규모로 알려진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규모도 필요할 경우 늘리겠다는 게 3당의 합의사항이지만 발행조건이 더욱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무기명 장기채를 발행할 바에야 실명제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금융종합과세의 유보는 사실상 실명제 폐지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다. 이번 실명제 보완대책은 일반 서민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은 금융거래에서 실명확인절차를 거치는 정도의 불편외엔 실명제에 따른 부담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행 실명제 하에서 연간소득 8천만원까지는 금융종합과세로 인해 오히려 세금을 덜 내는 등 혜택도 있다. 따라서 이번 대책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이들의 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실명제 찬성론자들은 굳이 「검은 돈」을 위한 창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즉 검은돈이라도 가명이나 차명 등의 형태로 은행이나 증권회사에 맡기고 있으면 산업자금으로 순환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돈은 돈주인 개인적으로는 지하자금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지상자금이라는 것. 16조원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전체 화폐발행액(현찰)이 모두 장롱속에 숨는다고 해도 검은돈은 16조원을 넘지 못한다는 지적도 한다. 결국 실명제 보완대책은 부유층의 탈세를 방조하고 검은 자금을 합법화하는 꼴이라고 그들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이라는 금융비상사태를 맞아 「자금시장 정상화를 위해선 한푼이라도 아쉽다」는 주장 앞에서 이번 개편을 통해 실명제는 폐지 직전상태에 놓이게 됐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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