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뛰는 대학/숭실대]中企이론-실무 독보적

  • 입력 1997년 12월 17일 08시 16분


올해로 개교 1백주년을 맞은 숭실대의 역사는 1897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배위량(W M Baird)이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평양에 세운 숭실학당에서 시작된다. 당시는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광무(光武)원년으로 전국 주요도시에서 독립협회가 민족 민권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족의식이 싹트던 시점이다. 학생 13명으로 출발한 「사랑방 교실」이 1906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부로 승격,선교사와 평양주민의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고등교육 보급과 민족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을사보호조약 반대에서부터 1백5인사건, 조선국민회사건,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에 숭실인들이 주도적으로 역할해 지조와 기상을 드높였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 1938년 스스로 학교의 문을 닫은 숭실대는 공백기를 거쳐 6.25전쟁 와중에 공산정권의 박해를 피해 월남했다. 1954년부터 서울의 임시교사에서 학교역사를 잇다가 3년 뒤 서울 동작구 상도동 현위치로 옮겼다. 그래서 숭실대는 잃어버린 평양교정을 되찾겠다는 신념으로 꽉 차있다. 숭실(崇實)이란 진실(眞實)과 실업(實業)을 숭상한다는 뜻이며 조선후기의 실학정신과 기독교를 바탕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는 꿈이 담겨 있다. 차이석(車利錫) 조만식(曺晩植) 안익태(安益泰) 현제명(玄濟明) 김동진(金東鎭) 황순원(黃順元) 등 독립운동가와 문화계 거목, 그리고 한경직(韓景職) 강신명(姜信明)목사와 같은 훌륭한 교계 지도자들을 길러냈다. 8개 대학원, 7개 단과대학, 5개 학부, 19개 학과에 1만2천명의 재학생이 있고 지금까지 3만여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숭실재단 이사장은 곽선희(郭善熙)소망교회 목사. 교훈은 진리와 봉사, 학교상징물은 백마상. ▼정보화 선두〓숭실대는 대학정보화 분야에서 앞선 대학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컴퓨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70년 전자계산학과를 국내 최초로 개설, 정보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94년에는 컴퓨터관련 4개 학과를 통합, 컴퓨터학부로 개편하고 정보과학대학을 신설하는 등 발빠른 정보화 행보로 96년 동아일보사가 실시한 대학정보화 랭킹평가에서 종합대학 1위, 전국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정보과학대학원은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숭실대는 정보통신 중심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도서관 과학관 등 교내 모든 건물을 비동기식 전송방식(ATM망)으로 연결, 각종 자료와 인터넷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게 했다. ▼중소기업분야 특성화〓83년 중소기업대학원에 이어 95년 중소기업학과를 국내 최초로 신설하는 등 중소기업 창업의 이론과 실무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올해 2학기에는 사업가정신과 창업전략을 가르치는 교양과목으로 「정주영(정주영) 창업론」이란 이색 강좌를 개설했다. 이 강좌에 2백여명의 수강생이 몰리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앞으로 성공한 기업가들의 창업론을 계속 소개할 계획이다. 2000년에는 연건평 3천6백여평의 숭실벤처정보기술원을 완공, 산학협동을 통해 정보통신분야의 30여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등 창업의 요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숭실대는 정보화와 중소기업분야를 특성화, 교육부에 의해 2년연속 교육개혁 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세계화 교육〓숭실대는 95년부터 22명의 외국인 교수진을 갖춘 어학원을 개설, 소그룹단위로 영어회화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26개 위성을 수신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실에서는 80여대의 컴퓨터 단말기와 화면 등 좌석마다 설치된 첨단 시청각시설을 이용해 생생한 어학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양필수과목인 영어회화는 2학점으로 돼있지만 주당 3시간 수업을 하는 등 교육의 질이나 강도가 높다. 또 미국 등 10개국의 25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해 교수 및 학생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매결연대학에 유학할 경우 18학점까지 인정, 영어 문화 역사 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SUAP)을 실시하고 있다. 〈이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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