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가상시나리오]바닥난 달러…벼랑에 선 경제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 외환시장 상황 ▼ 외환시장에서는 당초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천5백원을 넘으면 한국에 있는 모든 기업이 망하는 상황이 온다」고 걱정해왔으나 원―달러 환율은 11일 1천7백원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국내 금융시장이 돈이 있어도 신용경색 등으로 돌지 않아 마비된 것과는 달리 외환시장은 수요는 많고 달러화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마비됐다는 게 외환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달러화 공급선은 정상적인 시장상황이라면 기업들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자금과 국내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차입한 돈이 주류. 하지만 기업들은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있으며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은 사실상 중단됐다. 반면 달러화 수요는 △해외부채 원리금 상환자금 △로열티 송금용 자금 △수입결제자금 등이 연말에 집중돼 있는데다 해외금융기관들이 국내 금융기관들에 빌려준 달러화 자금 상환을 요구,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당 원화 환율이 2천원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 시나리오1(자연스러운 정상화)▼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여건이 개선되고 외국인들의 주식 및 채권투자 자금이 유입돼 환율이 떨어지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수출대금을 외환시장에 공급, 환율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게 된다.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이같은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는 IMF 지원자금이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빚어진 상황으로 볼 때는 거의 현실성이 없다. IMF자금지원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신인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11일 한국의 31개 은행과 기업체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조정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해외금융기관들이 과거에 빌려줬던 자금마저 만기가 돌아오는대로 속속 갚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외환당국은 IMF에서 지원받은 자금으로 이를 메워주고 있는 실정. ▼ 시나리오 2(외화부도) ▼ 시나리오 1과 대비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리나라가 대외적으로 외채원리금 상환중지(모라토리엄)를 선언하는 것. 82년에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83년엔 칠레 베네수엘라 필리핀 이집트 유고 등이 선언한 전례가 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발상. 유럽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당장의 외채부담은 덜 수 있지만 국가경제가 최소한 20년은 후퇴하고 완전히 폐쇄경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도난 국가와 누가 무역거래를 하겠느냐』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식량과 원유의 수입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같은 시나리오만은 막아야 한다는 게 금융계의 주장이다. ▼ 시나리오 3(정부의 추가 차입을 통한 정상화)▼ 정부가 IMF 등 국제기구나 미국 일본 등과 협상을 벌여 연내에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들여오는 시나리오다. 재정경제원은 이와 관련, 11일 『각각 1백억달러와 40억달러의 긴급자금 지원을 약속한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연내에 20억달러씩을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일본의 지원시기는 아직 미정이지만 이들의 지원규모를 합하면 연내에 76억달러가 들어오기로 돼 있다는 것. 재경원은 여기에 가용 외환보유고 1백억달러를 합하면 연말까지 결제를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계는 이 정도의 자금유입 규모로는 달러화 부족위기를 넘기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연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2백억달러에 달할뿐 아니라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현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중 갚아야 할 규모도 작지않을 것으로 금융계는 추정한다. 또 외환시장이 마비됐기 때문에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결제자금을 외환보유고에서 지원해야 하는 부담까지 있다는 것. 한국은행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단기외채의 일부는 만기가 연장되고 있고 연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의 규모도 2백억달러에 크게 못미친다』면서도 정확한 규모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금융계는 정부와 외환당국이 지금이라도 연내에 필요한 달러화 수요를 투명하게 밝히고 협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백우진·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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