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가정폭력 없는 사회로

  • 입력 1997년 11월 18일 20시 13분


가정폭력은 국가 공권력이 개입을 자제해야 할 집안일이 더는 아니다. 여성관련 단체들이 최대 현안으로 추진해온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가정폭력은 이제 사사로운 집안일이 아니라 약자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로 규정됐다. 가정집 안방의 일에 국가 공권력을 불러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가정폭력이 방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이상 특례법 제정은 불가피했다. 가부장적 전통이 뿌리깊은 한국의 법과 공권력은 가정폭력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개입했고 고소가 있더라도 대부분 가볍게 처벌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새 법은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경찰이 신속하게 현장에 출동,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체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가정폭력을 알게 된 의료기관에도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법원은 가해자에게 피해자 접근금지,격리,구치소 유치등 강제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가정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서구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중대한 변화다. 가정폭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상습 가해자들에게서 알코올중독, 가학적인 이상성격, 어린시절 폭력경험 등을 공통적으로 발견한다. 이런 개인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북어와 마누라는 두들겨야 한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의 남성우위 관습이 남편의 손찌검을 조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이런 사고의 틀을 깨고 인권 보호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가정폭력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여성단체에 따르면 아내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마구 때리거나 흉기를 휘둘러 생명을 위협하는 사례도 많다. 일종의 정신질환에 가까운 상습 폭력으로부터 아내들을 보호해야 한다. 가정폭력을 아내 구타와 동의어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으나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동이나 노인도 결코 새 법이 부차적으로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다. 학대당하는 아동들은 신체적 상처는 물론 정신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다. 이 법 제정을 계기로 아동과 노인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하리라고 본다. 매맞는 남편의 문제도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로는 적지 않은 남편들이 아내한테 매맞으며 살아가고 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다. 폭력이 없는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반이 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또한 이 법 집행과정에서 사생활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부작용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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