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호주]김수열/인간애가 넘치는 나라

  • 입력 1997년 11월 18일 08시 00분


3년만에 다시 시드니에 도착하니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게 없이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공항 주차장 길 쇼핑센터 등등.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3년간 해외근무를 마치고 김포공항에 내리면 꼭 다른 고장에 온 것처럼 길이며 아파트며 건물이 모두 변해 생소했던 기억과는 상반됐다. 호주는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반대지만 여러가지 생활패턴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로 주행방향이 반대여서 자동차 핸들의 위치가 반대다. 전기 스위치도 우리는 대개 올려야 불이 들어오지만 이곳에서는 내려야 한다. 동네 운동장에서 조깅을 할 때도 우리는 운동장을 왼쪽에 끼고 뛰지만 이 사람들은 오른쪽에 끼고 돈다. 시장 여건도 우리와 정반대다. 우리는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인구기준으로 보면 국내 내수시장은 세계에서도 가장 좋은 시장 중의 하나다. 하지만 호주는 한반도의 35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에 인구는 남한의 절반도 채 못되는 1천8백50만명이 흩어져 살고 있으니 인구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나쁜 시장 중의 하나다. 계절이 우리와 정반대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건물을 지어도 짓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느리면서도 철저하다. 대중교통수단도 극히 일부에 한정돼 있을 뿐 아니라 출퇴근시간 배차간격은 15분 이상이다. 그외 시간에는 1시간에 1번 다닐까말까 할 정도다. 출퇴근 시간에도 물론 앉아서 갈 수 있다. 어디든 소리내어 코를 풀고 빵이든 과일이든 쩝쩝 먹어대는 것이 관례로 허용되고 나이에 관계없이 「야, 자」하며 이름을 불러대는 것도 우리와 반대다.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화학 지학 등 일상생활에 별로 응용효과가 없는 분야까지 배우지만 이곳에서는 대학에서조차 전공분야를 넘어서는 과목은 전혀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과 대화중 『미스터 김은 이상한 것을 많이 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구입한 물건에 하자가 있으면 언제라도 교환해주는 상도덕이 확립되어 있는 나라. 택시가 친절하고 공공서비스기관이 애국적으로 봉사하는 나라. 우리의 옛모습처럼 진심으로 옆집을 이웃사촌으로 생각하고 남의 불행을 서로 도우려는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들. 호주는 시간이 흘러도 변해서는 안되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아직도 간직한 아름다운 나라다. 김수열(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시드니무역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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