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네팔 트레킹]거기에 가면 「자연」이 된다

  • 입력 1997년 10월 30일 07시 25분


부처는 왜 눈덮인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끝없는 명상에 빠졌을까. 달마는 왜 설산(雪山)으로 홀연히 사라졌을까. 눈부신 눈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땅 네팔. 하늘과 땅이 입맞춤을 하는 세계의 지붕이다. 구름보다 더 높은 봉우리들이 사철 변하지 않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이 곳은 9월말 우기가 끝나면서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전문장비 없이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 히말라야를 체험하려는 사람들, 이른바 트레킹이다. 산에서 먹고 자며 동네 약수터 가듯 가볍게 걸으면 사진에서만 보던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일흔네살된 화가 밀러는 동갑내기 부인 안나와 함께 16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는다. 올해 벌써 여덟번째. 한번 오면 열흘 일정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다. 밀러는 『언제 봐도 변하지 않는 히말라야는 젊다. 생명이 약동한다. 「늙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예서 썩 물러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40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한 이마이 구키료(67)는 그저 설산을 바라만 보기 위해 15년 전부터 이 곳을 찾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따라다닌 아들은 이제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그의 동반자다. 아침저녁으로 별 말없이 아들과 설산을 바라보며 묵묵히 산책하는 아버지와 아들. 『아들에게 은행통장이나 증권이나 번듯한 집은 물려줄 수 없어도 히말라야는 통째로 물려줄 수 있다』며 이마이는 선한 미소를 짓는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곳을 찾은 한국인 트레커들도 3천여명이 넘는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임우상씨(42)는 『3년에 한번씩 히말라야에 가기 위해 돈을 모은다』며 『해지는 설산의 아름다움이나 장엄함 앞에서 숨이 막힐 듯한 경험을 해보라. 산다는 게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모른다』고 탄성을 내지른다. 산스크리트말로 눈(雪·히마)과 집(알라야)의 복합어인 히말라야는 눈의 집이라는 뜻. 해발 7천m급 고산이 3백50여개, 8천m가 넘는 세계 최고봉급은 열네개나 된다. 이중 9개가 네팔에 있다. 몇 백억년 역사에서 겨우 70, 80년을 살다가 떠나는 덧없는 이승의 인생들은 이 곳에서 영원을 발견한다. 아귀다툼 인간세상을 굽어보며 병풍처럼 늘어 서 있는 백색철봉. 그 곳에 오르면 우리는 마치 신을 만나러 하늘을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네팔〓허문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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