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지방대생 설움]부모 뵙기도 후배보기도 민망

  • 입력 1997년 10월 27일 19시 40분


『부모님을 볼 때마다 제가 죄인처럼 느껴져요. 연말까지 안되면 친구와 함께 포장마차를 시작할 겁니다』 지난해와 올해 40여곳의 입사시험에서 불합격해 현재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동아대 인문과학대 졸업생 박모씨(27). 집에서는 부모님을 볼 낯이 없고 학교가면 후배들을 대하기가 민망해 낮에는 편의점에서, 밤에는 집근처 독서실에서 취업공부에 매달린다. 경기침체와 잇따른 부도여파로 대부분의 기업이 올해 신규채용 규모를 대폭 감축해 대학에 보내오는 입사원서도 예년에 비해 30∼40%나 줄어들자 원서를 구하는 과정부터가 「전쟁」이다. 경북대 이모씨(28·경영학 4년)는 『대부분의 학과에서는 학점과 나이 결혼여부 등을 기준으로 정해 원서를 배정하고 있다』면서 『입사원서 배분순서를 둘러싸고 같은 과 친구끼리 싸움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에 밀려 4학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지방대에서 공통적인 현상. 충북대 경영학과 김모씨(25)는 『경영학과 4학년생 1백명 중 현재 30여명이 해외어학연수 등 취업준비를 위해 휴학한데다 많은 학생이 취업보도실과 도서관에서 살아 강의실이 썰렁하다』고 전했다. 어쩌다 열리는 지방대의 취업박람회는 아무런 채용계획 없이 홍보만을 위해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이 많아 학생들을 실망시킨다. 10일부터 이틀간 대구 영남대에서 열렸던 취업박람회에는 4만여명이 몰렸으나 1백10여개 참가기업 중 한명이라도 채용한 곳은 3,4개에 불과했다. 전남대의 한 교수는 『요즘은 고3 진학지도 교사들이 지방대는 취업이 안된다며 무조건 서울로 진학할 것을 종용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기업이 지방대생을 홀대해 너도 나도 서울로 몰려든다면 지방대는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지방대 취업상담실 관계자들은 『지방대생도 최소한의 응시 기회는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한다』며 『정부나 전경련 등이 나서서 모든 기업의 서류심사과정을 공개하고 신입사원 중 지방대생의 채용비율을 일정하게 규정하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지방대생의 취업난을 하소연하기에 앞서 냉정하게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경북대 취업전문가 김대규(金大圭·교육학박사)씨는 『지방대도 끊임없는 투자와 교과 개편으로 서울의 명문대생이 습득할 수 없는 지식과 실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노력을 통해 학생들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구·광주·청주〓윤종구·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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