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주택]이상연/파주 화계당,뒤뜰 숲「나만의 공간」

  • 입력 1997년 10월 27일 06시 58분


경기 파주시 화계당(花階堂)의 설계를 의뢰받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주변경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을이 익어가는 넓은 들판을 나지막한 산들이 병풍을 펼친 듯 감싸안고 있는 풍경이 참으로 평화스럽고 풍요로웠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전원주택들은 서구형 목조주택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한집은 입주한지 일주일도 안돼 불이 나 흉측하게 검은 재만 남기고 있었다. 우리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서구형 목조주택은 서구인을 위해 만들어진 기존모델을 조금씩 변형한 것에 불과해 획일적인데다 마당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런 목조주택이 전원주택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집장수들에 의해 공급되던 「부동산으로서의 집」이 건축주의 꿈이 담긴 「아름다운 내집」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집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결과다. 우리 건축 전통이 단절된 것도 그 한 원인이 됐을 듯싶다. 화계당을 설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자연과 어울리면서 전통 건축의 이상을 담은 공간구성이었다.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건축부지는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들판을 바라보는 동남향의 양지바른 땅이었다. 그래서 숲을 따라 나지막하게 펼쳐지면서 수평적 격자 프레임들의 반복과 커다란 원호를 그리는 지붕선을 갖게 했다. 파주의 전원 풍경을 형상화하는 작업이었다. 집 앞 부분에 개방된 넓은 정원을 만들고 뒷부분에도 전통주택의 뒷마당과 같은 후정(後庭)을 두었다. 거실은 본채와 독립시켜 복도로 연결하고 이 복도에서 뒷마당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건물에 가려 숨겨진 뒷마당은 옛날 규모 있었던 집안의 아름다운 화계(花階)와 같은 기능을 지닌 곳으로 이 집의 가장 독특한 공간이다. 밖으로 노출되지 않은 「나만의 공간」으로서 울창한 숲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30대 후반의 건축주 부부는 낮은 툇마루가 있는 이곳에 식탁을 놓고 가끔 어린 자녀와 함께 야외식사를 즐기기도한다. 집 내부 거실과 1층 안방, 2층 서재에서는 앞쪽의 정원과 계속 이어지는 파주의 넓은 들판이 시원하게 보인다. 식당과 부엌, 2층 자녀방에서는 뒤쪽의 울창한 숲을 볼 수 있다. 집이 자연속으로 들어가고 자연이 집속으로 들어오는 전통건축의 자연관을 화계당에서 되살려보고자 했다. 이상연<가람 이상연건축설계사무소 대표> ▼약력 △성균관대건축과 서울대환경대학원 졸 △국전 건축부문 문공부장관상 수상 △성균관대 홍익대 출강 △동아대의대부속병원 현대산업개발사옥 트윈타워 설계 02―56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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