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WTO시대에 웬 301조』

  • 입력 1997년 10월 2일 20시 20분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인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출범때 미온적이던 유럽을 설득하는 등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당시 『세계는 이제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자유무역체제로 접어들었다』며 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루과이라운드(UR)를 상설화시킨 치적을 대내외에 자랑하기 바빴다. 미국은 이를 증명이나 하듯 WTO출범 뒤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은 20건의 제소를 당했고 34건을 불공정무역사례로 제소했다. WTO무대가 공정한 자유무역을 강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나 WTO 후속 금융 통신서비스개방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시장개방 정도가 높은 유럽측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개방안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압력에 늘 시달린다. WTO체제가 출범한 지 2년9개월. 미국은 그러나 다자(多者)체제의 권위와 효능을 스스로 무시하는 매우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 WTO체제 이전에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내들었던 슈퍼301조의 효력에 아직도 미련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슈퍼301조는 95년 일본과의 자동차분쟁때 이미 날이 무뎌졌음이 입증됐다. WTO체제로 문제를 끌고가려는 일본 입장에 각국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방한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WTO체제에서 슈퍼301조는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미국이 슈퍼301조에 따라 실제로 보복조치를 가한 것은 301조 발동건수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국내법인 종합무역법 슈퍼301조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통상질서도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오만함의 표현이다. 상대국의 시장을 열어놓을 수만 있다면 다자간 규칙도 무시한 채 우선 두들기고 보자는 것이 미국의 통상전략인 셈이다. 박래정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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