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세원/『北에도 「개인」이 있다』

  • 입력 1997년 9월 21일 20시 28분


첫 대면을 할 때만 해도 표정이 굳어 있던 남북학생들. 「고향의 봄」 「반달」 「아리랑」을 부르고 제기차기 윷놀이 닭싸움 등 민속놀이를 함께 즐기며 한층 가까워졌다. 13∼17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4차 세계청년학생평화세미나. 2백여명의 남북한 학생들이 같이 보낸 4박5일은 기자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지금까지 한 묶음으로 취급해 왔던 북한이라는 「집단」속에 분명 「개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한 연구원생(대학원생)은 『북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주요 수출입시장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정권 수립 이후 한번도 정치지도자가 바뀌지 않아 국제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어를 전공한다는 그는 외국어를 배울수록 그만큼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다며 통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유연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개인이 있다는 사실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연구원생은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에게 『소문을 듣고 황장엽 망명 사실을 알았다』며 『많이 바빴겠다』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북한 신문을 보면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며 『서방 신문처럼 사회의 문제점도 파헤치고 비판하는 언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북한학생들은 아직 「집단」이었다. 학생은 물론 교수들조차 무엇을 물어도 똑같이 대답하고 질문할 때도 똑같은 내용이었다. 한국학생들은 북한학생들이 즐겨 부르고 낭송하는 대중가요와 서정시, 인기 있다는 영화조차도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어서 대화가 막힐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꽉 막혔던 집단은 이제 조금씩 숨통이 트여가고 있었다. 집단속에서 찾아낸 「개인」은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왔다. 통일로 가는 길도 그만큼 앞당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세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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