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선/짓밟힌 「나리꽃」

  • 입력 1997년 9월 13일 08시 22분


어찌되었든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모든 사람의 간절한소망에도 불구하고 한가위귀성행렬이 시작되는 날에 나리양은 차디찬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시이 사회의 불행에 몸서리를치며 할 말을 잃는다. 그런데범인이 아이를 수태한 여자라니…. 차마 보고 들을 수가 없어서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임산한채 유괴라니 ▼ 뻐꾸기의 새끼기르기에 관한 필름을 본 적이 있는가. 어미뻐꾸기는 자기 알을 대신 품어줄 가짜어미의 둥지 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가짜어미가 없는 틈을 타서 알 하나를 먹어없애고 대신 자신의 알을 둥지에 넣어둔다. 그러면 먼저 부화된 새끼뻐꾸기는 가짜어미의 알과 새끼를 하나씩 둥지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 둥지를 독점하고서 아무 것도 모른 채 기를 쓰고 먹이를 가져오는 가짜 어미로부터 날름날름 먹이를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런 과정을 보다보면 티끌 한점도 이 세상에 불필요하지 않은 유기물로 만드신 신의 섭리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본능만으로 생존하는 짐승이 아닌 자유의지로 생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행스러워질 것이다. 또한 아이를 낳았거나 아이를 몸안에 품고 있는 여자라면 어미뻐꾸기를 보며 진저리를 치면서 탄식할 것이다. 어떻게 저 흉물스러운 것이 어미인가 하고….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기에는 아직 좀 이른 나이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내 몸안에 아이를 품고 있을 때였다. 내 몸 안에서 또하나의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품게 해주었다. 심지어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조차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이제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하자 모든 사람들을 다 껴안고 싶었다. 사람보다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보다는 우리들이라는 말이 더 듣기 좋았다. 한 생명을 몸안에 품고서 나는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눈을 뜬 것이었다. ▼ 「나」보고 「우리」를 ▼ 어찌 나뿐일까. 어미가 되었거나 어미가 될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개안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괴사건이 날 때마다 나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두번 다시 그런 사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도대체 어떻게 어미라는 사람을 가릴 수가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사람과 짐승을 구별할 수 있는가. 어쩌다가 한 생명을 품고서 한 생명을 빼앗는 끔찍한 불행을 우리가 지켜보게 되었는가. 가까스로 눈을 뜨고 바라본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없다. 우리가 아닌 나만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다. 누구를 보아도 그 눈동자는 텅 비어 있다. 아, 이제 제발 누구를 보아도 그 눈에 타인의 모습이 들어 있는 눈부처를 볼 수 있게 하자. 그래야 사람의 눈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우리가 인간다워지지 않겠는가. 이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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