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연해수/의약품 슈퍼판매는 시대역행

  • 입력 1997년 9월 13일 08시 22분


소비자단체는 휴일이나 심야의 약국 이용이 불편하므로 슈퍼마켓에서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응급시의 편의성만 내세운다면 병원이야말로 연중무휴로 24시간 문을 열고 그것도 바로 내집 앞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미국은 슈퍼마켓에서 의약품을 파는데 왜 우리는 안되느냐』는 주장도 사정을 잘 몰라 나오는 얘기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약국이 없는 마을이 많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의 의약품 판매를 허용했다. 미국보다 의약이 발달됐고 의약분업이 잘돼 있는 유럽 선진국 어디에서도 약품의 슈퍼마켓 판매는 허용되지 않는다. 일반의약품(OTC)이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없는 소화제 진통제 해열제 소독약 등을 말한다. 그러나 당뇨 갑상선환자가 혼합해 복용하면 위험한 피린계, 반점 고열 쇼크현상 발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술파제도 일반의약품에 포함돼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약사는 환자가 평소에 무슨 약을 먹는지, 장기간 복용할 때 부작용은 없는지를 면밀히 관찰한 후 약을 권한다. 일반의약품도 약사가 판매해야 하는 당위성은 여기에 있다. 몇해전 미용 애견용품 판매소에서 약품취급을 할 수 있도록 하자 가축병원에서 해야 할 예방접종은 물론 수술까지 시행한 사례가 있었다. 약품의 슈퍼마켓 판매가 허용된다면 제조업체와 직거래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문의약품 판매나 조제행위까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지난날 약국마다 약품가격이 들쭉날쭉한데다 약사가 「돈만 아는 부류」로 인식돼 약품의 슈퍼마켓 판매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즘은 과당경쟁과 높은 노동강도 때문에 문을 닫는 약국이 속출할 만큼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가격 및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긴장된 상태에서 1차 의료기관으로서의 사명감을 되새기고 있다. 약사회는 약국 폐문시간을 오후10시 이후로 정했으며 구급약을 싼값에 제공하고 변질된 약품은 무상으로 교환해주기로 하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약사들이 한달에 2, 3일의 휴일을 빼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꼬박 약국에 「갇혀」 있는 고충을 이해한다면 「24시간 문이 열려 있는 약국」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화 시대인 오늘날 슈퍼마켓에서의 의약품 판매를 허용한다는 것은 종기나면 생으로 짜내고 불에 데면 간장 바르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발상으로 들린다. 연해수(안양비산약국 약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