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귀순 정현씨가족 脫北인터뷰]쫓아낸뒤 늘 감시

  • 입력 1997년 9월 13일 07시 35분


북한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는 주민들에게 총살령을 내리고 한국이 제공하는 식량이 북한으로 반입될 때는 국경지역의 경비를 크게 강화하는 등 식량난 속에 체제단속을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90년8월 귀순한 정현(鄭顯·33)씨를 따라 최근 추가로 북한탈출에 성공한 정씨의 어머니 장인숙(張仁淑·56)씨와 둘째 동생 용(龍·27) 셋째 동생 남(男·24)씨 등 일가족은 12일 덕수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정씨의 두 동생은 『식량을 구하려는 무단 월경자가 급증하자 김정일(金正日)은 지난 5월경 국경을 4m만 벗어나면 무조건 총살하라고 지시했다』며 『그 후 국경경비대가 불법 월경자들에게 사격을 가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인숙씨는 『지난 6,7월 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한 식량이 중국 투먼(圖們)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올 때는 국경경비가 중대급에서 대대급으로 바뀌고 함경북도 온성지역에서 식량을 구걸하던 주민 5백여명이 산속으로 소개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탈북귀순자 가족에 대한 탄압에 시달리다 탈북을 결행했다고 밝혔다. 정씨의 어머니 장씨는 평양 운수대학 교량터널과 출신의 설계사로 주체사상탑 설계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김정일표창과 국기훈장 등을 받은 북한의 엘리트 여성. 정씨의 아버지 정순성씨는 인민경비대 대좌로 복무하다가 지난 78년 9월 사망했다. 또 용씨는 만경대혁명학원과 경성비행군관학교를, 남씨는 평양보통강제1고등중학교를 다녔을 만큼 이들 가족은 북한사회의 핵심계층에 속했다. 그러나 90년 8월 정씨가 한국으로 귀순한 뒤 어머니 장씨는 그해 12월말 아들 남씨와 함께 함경북도 온성으로 쫓겨났고 경성비행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용씨도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둘째 아들 광(光·30)씨는 함께 오지 않았는데…. 『(울먹이며) 그 애는 최근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처가도 걸려 있고 해서 함께 오지 않았다』 ―(장씨에게)외부에서 보낸 구호식량이 도착하면 북한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나. 『식량전달 대표단에 「도와줘 감사하며 한번 더 도와달라」는 말을 하도록 인민반별로 교육받았다. 가정집에서는 이들 방문시 강냉이밥 대신 풀죽이나 풀떡을 먹으라고 했다』 ―(남씨에게)식량을 구하러 여행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은가. 『열차의 경우 객실과 지붕위는 물론 열차칸 연결부위까지 식량을 구하는 사람들로 꽉 찬다. 이들 중 80% 이상이 여행증명서나 차표가 없지만 단속할 엄두를 못낸다』 ―(용씨에게)형(현씨)의 귀순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텐데…. 『처음엔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형이 미웠고 복수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형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반가웠고 만났을 때는 펑펑 울기만 했다』 ―(장씨에게)평양과 온성에서의 생활상 차이는…. 『평양에서 중상류층으로 살다 온성에 가서 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늘 감시와 차별을 당해야 했다』 〈한기흥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