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병수/두 民選의 도중하차

  • 입력 1997년 9월 9일 20시 09분


지난 2년2개월여동안 지방정부를 이끌어온 두 사람이 밝힌 사퇴의 변에는 「시도지사로는 안되겠다」는 공통된 언어가 담겨 있다. 조순(趙淳)서울시장은 『서울의 문제는 서울시의 차원에서는 풀리지 않는다. 중앙정치의 차원에서 비로소 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는 더욱 알기쉬운 표현으로 『더 큰 바다로 나아가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조씨와 이씨는 언제, 왜 시도지사직을 버리고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함구의 배경엔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고 수차례 밝힌 약속을 어긴 사실이 있다. 민선(民選)시도지사 자리가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한 발판이 돼버렸다는 비판적 여론은 더욱 따갑다. ▼ 약속지키기 힘들었나 ▼ 95년 「6.27 지방선거」의 첫번째 의의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내고장 인물을 내 손으로 직접 뽑는데 있었다. 후보들의 약속은 3년 임기를 통해 지방자치를 뿌리내리는 일에 모아졌다. 당선 직후 첫 정치적 약속도 마찬가지였다. 조씨는 『시민참여를 통해 살기좋은 서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씨는 『일등경기(一等京畿) 창조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이 이같은 약속을 지키기에 임기 3년은 매우 짧은 기간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잔여 임기 10개월을 앞두고 중도하차를 선언했다. 92년 미국 대통령예비선거 당시 앞서 가던 마리오 쿠오모 뉴욕지사가 지사직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이유로 출마를 포기한 사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조씨와 이씨가 약속을 지켰는지 여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조씨가 독일 방문시 대통령선거 출마 의지를 나타내고 서울에 돌아와 사실상 출마선언을 한지가 한달이 넘었다. 이씨가 신한국당 후보경선에 뛰어들어 사실상 도정(道政)을 소홀히 한지는 넉달이 지났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나오고 있는 행정공백에 대한 우려는 이제 구문(舊聞)에 불과하다. 그 우려의 목소리는 직업공무원제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의 풍토와 연결돼 있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해져 있는 공직사회에서 시도지사의 부재는 곧 업무의 공백을 의미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주민은 1천8백40만명으로 전국인구 4천6백만명의 40%다. 정치 경제 문화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수도권의 문제가 「전국의 문제」로 된지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수도권 지방자치가 흔들리고 있는데 대한 우려가 큰 이유는 이같은 현실에서 비롯된다. 민선시도지사라는 자리는 대표성과 상징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은 따끔하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벌써부터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 행정공백 책임은 누가… ▼ 조, 이씨는 사퇴의 변에 앞서 스스로 시민과 도민에게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대통령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왜, 언제부터, 무엇을 위해」 민선 시도지사직을 내놓아야 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하지않을 경우 「죄송하다」고 밝힌 사과는 결국 대통령선거전에서 표를 얻기 위한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았다고 유권자들은 치부할 것이다. 장병수<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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