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러시아 한인동포 강제이주령 이후 60년

  • 입력 1997년 8월 21일 20시 32분


1937년 8월 러시아 극동지방에 살던 약 18만명의 한인동포들에게 강제 이주령이 내렸다. 한인들이 일본과 내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서 멀리 격리시키겠다는 것이 당시 소비에트정부의 발상이었다. 한인들은 9월부터 봇짐을 싸들고 삼삼오오 정든 집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역 등에 모였다. 이들은 이주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채 지시대로 기차에 올랐다. ▼한인들이 한달이나 걸려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카자흐 등 중앙아시아지방이었다. 도중 어린이 노인 등 5천여명이 숨졌다. 가족들은 기차가 서면 시체를 담요에 둘둘 말아 철로변 모래땅에 파묻고 길을 떠났다. 『…하늘과 땅은 이렇게 있다거늘/소낙도 치고 벼락도 울거늘/나는 다만 때만 오면 하고/맨주먹만 쥐었다 폈다』 당시 집단 이주당한 조선사범대 학생들은 기차 천장을 바라보며 巴人 金東煥(파인 김동환)의 「손톱으로 새긴 노래」를 읊조리는 것으로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삭였다. ▼그해 8월21일 스탈린이 강제이주 명령서에 서명함으로써 시작된 한인들의 추방행진은 연말까지 계속되었다. 그후 타슈켄트 알마티 등 반사막에서 모진 날씨, 풍토병과 싸우며 쌀농사를 짓고 교육에 힘쓴 한인들은 이제 학계 재계 문화계는 물론 정계에까지 진출, 활약하고 있다. 인구도 40여만명으로 늘었다. 소비에트의 강압정치로 잃어버렸던 언어 문화나 민족의식도 한―러 수교 후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이들 한인과 한국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아 다음달 1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슈켄트까지 장장 8천여㎞를 11일 동안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회상의 열차」를 계획했다. 민족의 고난을 다시 새기고 그 꿋꿋함을 배우자는 취지라고 한다. 21세기는 민족 수난 대신 영광을 기록하는 새 시대이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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