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신혜숙/시어머니의 「선물」

  • 입력 1997년 8월 21일 07시 38분


우리 집 베란다엔 화분과 어울려 몇개의 돌이 놓여 있다. 그중 두어개는 김장이나 오이지 등을 누를 때 쓰이는 둥글넓적한 돌이고 나머지는 여행길에 기념삼아 하나 둘씩 주워 온 평범한 돌들이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를 건너온 돌이 있는데 바로 울릉도 돌이다. 이 돌은 투박한 사발 모양으로 가운데가 비어 있고 바깥쪽으로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우리 집 돌중에 가장 돋보인다. 화산석이라 가볍고 다루기가 편해 어항속에 넣어 보기도 하고 때론 거기에 난 따위를 심어놓고 관상하기도 한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관광이 쉽지 않던 시절인데 하루는 시어머니가 울릉도 구경을 가시게 됐다며 즐거워하셨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드리며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당신 혼자 가시는 것이 미안하신듯 『얘야 올 때 뭘 좀 사다 주련』하셨다. 나는 무심코 『조그만 돌멩이나 하나 주워 오세요』 했다. 일주일 뒤 오척 단신 어머니는 얼굴이 묻힐 정도로 큰 봇짐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놀라서 짐을 받아 내리며 뭐냐고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가쁜 숨을 내쉬며 돌이라고 하셨다.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짐을 끄르니 문제의 돌멩이는 보이지 않고 보따리에 잔뜩 눌려 있던 취나물만 미어질 정도로 터져나왔다. 이 무거운 짐을 이고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싶어 나물은 무엇하러 그리 많이 사셨느냐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대답이 다음과 같았다. 『너 주려고 여관집 마당에 있던 돌을 힘들게 얻어내지 않았겠니. 그런데 주인 말이 울릉도에선 돌 하나도 맘대로 빼가지 못한다는 게야. 그래서 궁리 끝에 노점에서 팔고 있는 취나물을 몽땅 사 이 돌을 켜켜로 휘감다시피 해서 갖고 나왔지 뭐냐. 도둑질을 한 것 모양 왜 그렇게 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던지…』 그날 어머니의 봇짐 속에 들어 있던 나물은 이웃집에 듬뿍듬뿍 돌리고도 남아 데쳐서 널어 말린 것이 큰 소쿠리로 그득했다. 그렇게 힘들여 시어머니가 선물하신 울릉도 돌은 변함없이 내곁에 있건만어머니는 지금 이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허전한 마음 이를데 없다. 신혜숙(경기 군포시 금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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