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美 정상회담시간 두차례 연기 『수모』

  • 입력 1997년 6월 26일 19시 47분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94년 9월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아일랜드에서 레널즈총리와 공항정상회담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레널즈총리를 상대로 회담을 한 사람은 러시아 부총리였다. 옐친대통령은 술에 취해 아예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한시간 전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레널즈총리는 러시아 부총리와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盧泰愚(노태우)대통령이 9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을 만날 때였다. 고르바초프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간 노대통령은 승강기로 고르바초프의 거실보다 한층 아래까지만 갈 수 있었다. 한층은 걸어서 올라갔다. 거실에서 노대통령을 맞이한 고르바초프는 함께 사진찍기를 거절했다. 『사진을 안찍으면 내가 당신을 만났다고 누가 믿겠는가』라는 노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겨우 악수하는 사진 한장을 찍을 수 있었다. ▼정상회담은 당사국의 국력이나 회담 필요성의 차이에 따라 절차부터 불평등한 경우가 생긴다. 지금까지 한미 정상회담을 보면 대개는 우리쪽에서 적극적이었다. 미국측이 먼저 우리와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한 예는 드물다. 한국에 들를 예정이 없던 미국대통령을 애써 서울에 오게 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안보문제 등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양이 안 좋을 때가 많았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의 이번 뉴욕정상회담도 그렇다. 당초 난색을 표명하던 미국측은 회담시간을 두차례나 연기했다. 그래서 멕시코 국빈방문 일정까지 지연됐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만나야 하는 것일까. 몇십분 만나보았자 양측 통역을 빼면 정상간의 의사교환은 겨우 몇분에 불과하다. 얼마나 큰 성과가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단지 만나는 데 의미가 있는 정상회담이라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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