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지명관/축제없는 「6월항쟁 10주년」

  • 입력 1997년 6월 10일 20시 22분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10년을 헤아리게 됐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10년 가는 세도 없다」고 했으니 10년이란 꽤 긴 세월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동안에 무엇이 변했다는 것일까. 여러사람의 희생을 경건하게 되새기면서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발전했다고 보고를 드릴 수 있을까. 1년 반쯤 전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명화 「남과 여」의 감독이기도 한 프랑스의 명감독 클로드 를루슈의 우리말로 직역하면 「모두들」이라는 1981년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1930년대 후반에 모스크바 파리 베를린 뉴욕에서 각기 활약하던 발레리나 피아니스트 지휘자 재즈음악가 네쌍의 부부가 걸어온 인생역정을 그린 영화다. ▼ 증오에서 통합으로 ▼ 전쟁에 휩쓸려 각기 뜻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유태인 부부의 경우는 남편은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었고 아내는 기차로 끌려가면서 젖먹이를 철로 위에다 버려야 했다. 독일의 지휘자는 나치에 협력했다고 해서 전후 뉴욕에서 유태인들이 표를 송두리째 사버린 텅빈 카네기홀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헤어짐이 있었고 견디다 못해 정신병원으로 간 여인도 있었다. 회한과 비애에 가득찬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서 그들의 예술을 이어간다. 이리하여 피날레는 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다. 1980년 모두가 파리의 광장에 모여 유엔아동기금(UNICEF)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열고 노래하며 라벨의 볼레로를 춤춘다. 고뇌와 고통의 운명을 넘어 환희에 이른다는 베토벤의 제9교향곡에도 비할 수 있는 정말 장엄한 화면이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나는 우리나라 역사를 상기했다. 그리고 다가올 6월 민주항쟁 10년의 날을 그려 보았다. 단지 지난 10년만이 아니다. 멀리는 1945년부터 생각할 수 있고 1961년부터 군사독재에 시달려 온 나날을 되새길 수도 있다. 정말 회한과 비애가 뒤섞인 많은 추억이 되살아난다. 누구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고 또 누구는 민주화 투쟁의 희생자로서 인생의 길을 바꾸어야 했다. 많은 헤어짐과 만남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체제에 협력했고 어떤 사람은 저항했다. 거기에는 억압하는 쪽과 억압받는 쪽이 있었고 심한 적대감정이 서렸다. ▼ 여전한 부패와 적대감 ▼ 그러나 6월 항쟁 10년에는, 너도 나도 다시 만나 볼레로를 춤춘 것처럼, 우리도 난세를 살아온 아픔을 달래고 그것을 넘어 환희의 춤을 출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사람은 직장에 남았고 또 한사람은 떠나야 했다. 지금은 여야 정당을 달리한 정치인이 돼 있을는지도 모른다. 또 어느 누구는 부유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적대관계에서 서로 증오를 내뿜었다고 해도 이제는 함께 모여 내일을 향해 축가를 부를 수는 없을 것인가 하고, 그날 나는 이상한 흥분마저 느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통일의 날이 아직 오지 않아서일까. 우리에게는 민주주의가 낯설기만한 탓일까. 부정과 부패는 여전하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측과 그것을 밝혀야 한다는 국민의 대립도 그대로다. 폭력이 난무하는 적대관계도 계속되고 있다. 「모두들」의 축제는 먼 앞날의 일같이 느껴진다. 아니 그것은 를루슈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민족의 이름으로 그 축제의 날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명관 <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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