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끝내 기대 저버린 한보특위

  • 입력 1997년 5월 3일 21시 42분


국회 한보국정조사특위는 끝까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오늘로 활동시한이 끝나는 특위는 그저께 마지막 회의에서 金賢哲(김현철)씨에 대한 위증고발동의안을 야당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단독으로 부결시켰다. 활동이 끝나면 바로 작성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토록 돼 있는 조사보고서마저 여야간 의견이 엇갈려 채택하지 못했다. 이런 추태를 보이려고 지난 40일동안 그 부산을 떨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보특위가 이처럼 파행(跛行)으로 막을 내리게된 이유는 자명하다. 여야 모두 한보와 김현철씨 의혹의 진상을 가려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여당은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비리혐의자들을 감싸고 돌기만 했다. 증인들이 거짓말로 진실을 호도하도록 유도하는 작태도 서슴지 않았다. 야당은 물증이나 정보가 취약한 상태에서 호통만 치며 정치적 반사이득을 취하는데 급급했다. 이런 정당들에 이런 특위가 실체적 진실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한 자체가 무리였다. 위증을 했음이 분명한 증인들에 대한 처리문제만 봐도 그렇다. 현철씨나 金己燮(김기섭)전 안기부운영차장의 경우 검찰 수사과정에서 청문회위증 사실이 속속 드러났는데도 여당은 절대 고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국회 증언감정법은 위증의 경우 「국회가 고발하여야 한다」고 의무규정을 두었지만 철저히 무시돼 위증고발은 한 건도 없었다. 실정법조차 지키지않는 국회가 무엇 때문에 소중한 시간과 인력,돈을 낭비하며 청문회를 열고 조사활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조사보고서 문제도 그렇다. 조사를 마치면 지체없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지만 지금같은 여야 대결상태에서는 도무지 될 것 같지가 않다. 지난 89년 보고서조차 없이 흐지부지 되고만 5공비리 국정조사의 전철을 똑같이 재연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 정치가 언제까지 역사의 시계를 거스르며 구태(舊態)를 되풀이할 것인지 서글프다. 우리는 위증고발안이 비록 특위에서 부결됐다 해도 본회의에서 재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특위 조사결과는 본회의 의결로 처리하도록 돼 있는 만큼 본회의에서 조사결과를 부결시켜 재심(再審)의 길을 터줄 수도 있다. 다음번 임시국회의 본회의가 열릴 때쯤이면 검찰의 한보 및 현철씨 의혹 수사결과도 나올 것이고 증인들의 위증여부도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국정조사제도의 정착과 국회의 권위를 위해서도 위증자는 철저히 가려내 법의 심판을 받게해야 한다. 여기엔 정치적 흥정이 있을 수 없다. 조사활동 기간 내내 미숙한 운영과 정치 쇼같은 작태로 비판을 받던 한보특위가 마무리마저 바로 못하고 해체되는 것을 여야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 수치를 갚기 위해서도 위증자 고발처리 방도부터 적극적으로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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