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특위위원들 하룻밤새 「순한 양」

  • 입력 1997년 4월 29일 19시 52분


29일 한보청문회의 특위 위원들은 「순한 양」 같았다. 청문회장 주변에서 『청문회가 아니라 상임위의 정책질의시간 같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같은 분위기 변화는 전날 朴錫台(박석태)전제일은행상무 자살사건의 「충격파」때문이었다. 평소 경제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불도저처럼 증인들을 몰아붙이던 국민회의 金元吉(김원길)의원은 이날만큼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신문을 했다. 그는 증인들에게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하자는 얘기지요』라며 직격(直擊)을 피했다. 김의원은 자살한 박전상무의 유서에 「김원길의원님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써있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고 말했다. 신한국당 孟亨奎(맹형규)의원도 『질책을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잘해 보자는 말입니다』며 노골적인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다소 여성스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독한 눈매와 매서운 신문으로 정평이 난 자민련 李良熙(이양희)의원도 솜처럼 부드러웠다. 그는 朴淸夫(박청부)증권감독원장에 대한 신문을 마치면서 『박원장은 혹시 증인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의혹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증인의 경우는 한보와 직간접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고 「면죄부」를 내줬다. 의원들의 신문 수위가 낮아지자 증인들도 『그 문제는 정책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자료를 안 가져왔다』(박원장) 『의원님이 한단계 건너 뛰어 질문하시는 것 같은데…』(李秀烋·이수휴은행감독원장)라고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날 신문의 압권(壓卷)은 신한국당 金文洙(김문수)의원. 김의원은 이원장을 신문하기에 앞서 『이 자리에 증인으로 나왔던 박석태전제일은행상무가 자결한데 대해 특위위원들도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고 운을 뗐다. 김의원은 이어 『만의 하나 그분이 어떤 비리에 관련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은행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은행원들은 양심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일장 연설을 했다. 김의원은 또 『증인은 은감원장으로서 박전상무의 자살을 보고받았나. 은행업계의 구조적 비리를 청산, 고인의 영전에 바칠 생각이 없는가』고 물었다. 이에 이원장은 『자살경위는 아직 보고 받지 못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라고 화답했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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