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인 봉합수사는 안될 말이다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12분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여야 정치인들의 검찰수사를 놓고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조기(早期)종결론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것도 한보사태에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의 李會昌(이회창)대표가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의 요담에서 날짜까지 제시하며 정치인에 대한 수사의 빠른 마무리를 건의했다면 이것은 검찰권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다. 검찰은 한보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모든 정치인을 철저하게 조사한 뒤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야당조차도 여당의 정치인수사 조기매듭론을 은밀히 거들고 있는 것은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척되면서 여야 없이 정치권 모두가 공멸(共滅)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치의 공백과 정국불안의 장기화는 좋지 않다. 경제와 안보 등 중요한 국정과제 해결에 정치권이 힘을 모으기 위해서도 정치인에 대한 장기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수사는 신속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도중에 적당히 덮어버리는 봉합(縫合)수사는 절대로 안된다. 정치인들이 한보로부터 검은 돈을 받은 일은 한보사건의 본질은 아니다. 파생물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정치인수사가 길어질 경우 그것이 한보의혹의 본질을 덮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비록 파생물이라 해도 기왕 사안이 불거진 이상 이것은 또 이것대로 관련 정치인을 빠짐없이 그리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미리 시한(時限)을 정해놓고 수사한다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은 검은 돈에 관한한 자유로운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눈으로 정치권을 보고 있다. 이 기회에 정치권의 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해야 한다. 정치자금이라는 핑계만 대면 무슨 돈이든 받아도 좋은 것처럼 여기는 정치관행을 차제에 끊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도 관련 정치인의 모든 의혹이 밝혀질 때까지 수사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검찰수사에 외압이 작용한다는 것은 안될 말이다.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다른 어떤 힘이든 외압에 의해 검찰수사가 또다시 왜곡(歪曲)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불신받고 있는 검찰이 또 한번 죽는다. 검찰수사에 정치적 외압이란 있어서도 안되고 외압에 의해 검찰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흔들려서도 안된다. 검찰수사에 정치논리가 개입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또다시 훼손된다면 법치주의의 기틀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정치인수사 조기종결론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자 검찰이 검찰권 침해를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수사는 신속해야 하되 동시에 철저해야 한다. 만약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왜곡된다면, 그것도 정치권의 외압이나 정치적 논리에 의해 봉합하는 모양이 된다면 누구보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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