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라 하기엔 너무한「소설」 佛 「거의 모든것에…」

  • 입력 1997년 3월 18일 07시 59분


[권기태기자] 문학사가들은 소설을 아주 큰 그릇이라고 말한다. 편지 일기 보고서 등 다양한 형식을 채용할 수 있고 독백이나 대화만으로 이뤄진 것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초 프랑스에서 8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던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는 「소설이라 하기엔 너무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프랑스 학술원 대상을 수상한 원로작가 장 도르메송(72)이 발표한 이 글은 인물도, 구성도, 스토리도 없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소설이라 밝히고 있고, 책을 펴낸 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사 갈리마르에서도 소설이라고 못박았다. 글은 빅뱅 이후 생긴 삼라만상에 대한 기발하면서도 박식한 성찰로부터 지구 최후의 날에 대한 장엄하면서도 코믹한 상상에 이르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단어들을 괄호 속에 공란으로 남긴 시가 있는가 하면 동음이의어들을 이용해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에로틱 콩트도 있다. 도르메송은 미테랑 전대통령이 숨졌을 때 공식 추도사를 썼던 프랑스 최고의 문필가 중 하나. 그는 이 「소설」 서문에서 『당신은 천만금의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당신이 조약돌도, 개울물도, 표범도, 벌새도 아닌 인간이기에. 인간은 삼라만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미약함도 알고 있다. 제목이 가리키는 「거의 모든 것이면서도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인간을 뜻한다. 인간을 다뤘기에 이 글이 소설이라는 것. 소설의 범주에 관해 프랑스에서 논쟁을 불러온 이 글이 최근 젊은 불문학도 유정희씨의 번역에 의해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됐다. 우리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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