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나종일/北 식량난 보고만 있을건가

  • 입력 1997년 3월 5일 08시 02분


「문민정부」 4년의 치적평가에서 통일에 관한 부분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일관된 전략도 정책도 없이 그저 일시방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가장 부족했던 것은 일관된 전략전술보다 철학과 소신의 문제가 아니었는가 한다. 서독의 위정자들은 동독이 언제 붕괴할 것인가 묻지 않았다. 관심의 초점은 체제나 이념 혹은 소수권력자들이 아니라 철학자 야스퍼스가 표현한 이른바 「삶의 조건충족」이었다. 서독은 동독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는데 노력을 집중했다. 공산체제를 견디다 못해 도피해온 사람들을 「귀순자」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이들을 이용해 체제우월을 선전하지도 않았다. 『일기를 써야 남한에 갈 수 있다』는 식의 일처리는 없었다. 북한인들의 가장 큰 고통은 현재 굶주림이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어린이들의 굶주림과 영양실조도 심각하지만 노인층의 희생이 크다고 한다. 아마 어린이들을 먼저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과의 변경무역에서 공장설비를 뜯어낸 고철을 곡식과 바꿔왔다. 그것도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기근은 첫해보다 그 다음해부터, 즉 팔 물건이나 비축 등도 떨어진 다음에 진짜 큰 희생을 낸다. 올해 북한의 모자라는 곡식량은 계산방식에 따라 1백만∼2백만t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런 산출방식의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계산을 하든 매일 5백g의 최소식량을 유지한다면 오는 4,5월 사이에 북한의 곡식은 바닥나게 돼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외국원조도 북한의 필요에 비해 절대 부족하다. 우리는 늘 북한의 10배에 달한다는 경제력을 자랑하면서도 외국의 대북한 식량원조를 막는 것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자초하고 외교적 역고립을 당해왔다. 그러나 외교나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다. 더구나 북한의 기근은 1,2년의 식량원조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이제는 정당이고 선거고 통일까지도 제쳐놓고 북한 사람들의 기아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그렇다고 선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원조제공자의 표기도 없이 양곡을 서둘러 보내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이나 그 시기를 생각하자. 물론 북한도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종일 <경희대교수·유럽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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