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엄상익/『우리는 다르다』 권위의식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최근 어느 지방법정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짙은 청색남방에 트레이닝바지를 입은 일단의 우람한 청년들이 경찰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에 들어서고 있었다. 법정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본 사무라이 같은 느낌의 청년이 과묵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법정에 들어오던 그 청년들은 갑자기 긴장을 하며 그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보스의 권위가 경찰관과 법정보다 훨씬 더 무서워 보였다. 그들은 사채 사무실을 차려놓고 폭력을 동원하여 서민들을 갈취했다. 그러나 법정은 그들에게 반성의 장이 아닌 것 같았다. 몇명씩 수군거리며 재판전략을 짜기도 하고 더러는 웃으면서 잡담을 하기도 했다. 개정시간이 되었다. 정리가 미안한 얼굴로 나와서 재판이 조금 지연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오는 관계인들이 지체를 하기 때문이었다. 정리의 말에 갑자기 법정 한구석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우리 알기를 어떻게 아는 거야. 우리가 교도관이란 말이야?』 사복을 한 경찰관으로 보이는 50대정도의 남자였다. 그는 인상을 가득 우그러뜨린 채 가지고 있던 서류들을 화풀이라도 하듯 옆의 탁자위로 던졌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우리는 달라」하는 듯한 권위의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구치소가 없는 곳에서는 경찰서 유치장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리고 경찰관이 당연히 교도관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게 법이다. 또 같이 국가의 공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어느 공무원이 상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공공의 장소에서 그는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권위의식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동반자가 되고 진정한 이해와 협력과 사랑이 움튼다. 허깨비 같은 권위의식은 열등감의 소산이다. 엄상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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