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광장/귀순자 체험기]南선 돈조심 北선 입조심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4분


한국에서 한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의 하나는 너무 자주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이었다. 높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잡혀가고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데도 부정부패가 끝을 모르고 계속되는 것이 이상했고 사건마다 금액이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이 놀라웠다. 지난 8년동안 이런 저런 사건을 겪고 나니 가슴 한구석에 『그렇게 부정부패를 쓸어 냈는데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북한에서도 뇌물 주고받기는 심각했다. 요즘은 더욱 심해졌다고 전해진다. 동독에 유학중이던 89년초 북한에 일시귀국했을 때 들은 일화가 생각난다. 평양에 있는 중앙동물원의 한 앵무새는 구경꾼들이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말을 시키면 『맨 입으로』라고 되묻는다는 것이었다. 앵무새도 뇌물(먹을 것)을 줘야 비로소 입을 연다는 풍자였다. 역시 89년의 북한방문 때 직접 경험한 일이다. 30층짜리 고층아파트의 25층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25층까지 걸어올라가야 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고장난지 벌써 5일째인데 아무리 연락해도 수리공들이 올 생각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쌀 술 고기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고의성(故意性)이 의심날만큼 엘리베이터의 고장이 잦고 그때마다 수리공들은 뭔가를 요구한다며 그 친구는 분노를 나타냈다. 북한고위층의 비리는 더욱 심하지만 언론 등에 공개되는 것이 없으니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 나라가 떠들썩하지는 않다. 북한에서는 뇌물수수죄 등 경제범에 대한 처벌이 정치범에 비하면 약한 편이다. 정치범은 연대처벌이 많지만 경제범은 대부분 당사자만 처벌한다. 경제범이 수용소나 아오지탄광에 끌려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손은 괜찮아도 입은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돈을 조심하라』는 말이 어울린다. 자본주의 국가의 특징인지 무슨 큰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돈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노래말도 있는가. 작년에 나름대로 열심히 저축을 했고 세금도 성실히 냈다. 그런데 단위를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이 부정부패 사건의 와중에 자꾸 거론되니 작디 작은 저축액이 더욱 초라해 보인다. 혹시 통일한국을 위해 써야 할 돈이 저런 사건의 틈에서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황장엽비서의 망명을 보니 통일이 먼 것 같지는 않은데…. 張永鐵(장영철) △30세 △동독 프라이베르크대학 유학중 89년 귀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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