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이렇게 덮어선 안된다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북한노동당 黃長燁(황장엽)비서의 망명을 고비로 한보비리 수사가 파장으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해방 이후 최대 권력형비리라는 한보의혹이 해방 이후 최고위급 북한 권력핵심의 망명에 가려지면서 국민들은 또 한번 허탈의 늪에 빠지고 있다. 한보비리와 황비서의 망명은 하나의 괄호로 묶을 수 없는 사안인데도 정부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속셈일지 모른다. 분단은 우리 정치를 항상 이렇게 왜곡해왔다는 점에서도 비극이다. ▼「黃망명」에 가려지는 「한보」▼ 솔직히 황비서의 망명 소식은 충격인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한보사건으로 나라가 파산할 것같은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북한까지 체제가 무너지는 징조를 보인다면 그 예상할 수 없는 혼란을 어떤 지도력이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두려움의 실체였다. 북한을 등져버린 황비서가 북한체제를 지켜온 큰 버팀목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이 두려움은 상상 이상의 현실적 색채를 띤 것도 사실이다. 金泳三(김영삼)정권은 지금 심각한 권위의 공황에 빠져 있다. 통치력이 구심점을 잃고 국정은 표류하고 있다. 이것을 어떤 형태로든 추스르지 않고는 경제도 안보도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황비서 망명사건도 문제의 한보의혹을 성역 없이 밝혀 정부가 거듭나도록 촉구하는 자극제로 삼아야 옳지 이를 어물쩍 덮으려는 절호의 계기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비선(秘線)에서 국가정책을 주무르며 대통령의 측근으로 자임해온 정부 여당의 숨은 실세(實勢)들이 아니다. 정권이 무슨 전리품인양 국가의 요직을 패거리져서 나눠 먹던 오만한 실세들은 그들이 합세하거나 경쟁적으로 저지른 부정 부패로 국가가 수렁에 빠지자 「나는 모른다」를 외치며 제 살길 찾아나서기 바쁜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추악한 실세들의 권력놀음을 개탄해마지 않던 대다수 국민이다. 그 대다수 국민의 충정어린 요구가 한보의혹의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한 국가기강 회복이라는 것은 이제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황비서 망명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떤 명목으로도 이 국민적 요청을 외면한다면 국가는 영영 난국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국민을 배반하고 국가를 얄팍한 계략으로 끌고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림없는 망상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대통령의 측근 가신에 야당총수의 그림자 의원을 끼워넣어 구속한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려 한다. 봇물처럼 터져나올 국민의 저항은 안중에도 없다는 자세다. 구속된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 등은 세상이 다 아는 대통령 측근들이다. 권력의 심기에 예민한 검찰이 그나마 그들을 구속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권력이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주범격」이라는 홍의원은 스스로를 「깃털」에 비유하며 더 많은, 더 큰 배후가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남겼다. ▼국민 심판받을 날 온다▼ 이 배후가 이른바「성역」이라면이 성역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 없이 한보의혹은 덮어지지 않는다. 덮더라도 언젠가는 국민의 심판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온다. 그 결단은 대통령이 사정(私情)에 기우는 범부(凡夫)가 될 것인가, 역사 앞에 옷깃을 여미는 용기있는 지도자가 될것인가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는 것일 수 있다.이것은 동시에 대통령이 임기중에 해야 할 마지막 개혁일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는 사즉생(死卽生)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그리고 그것은 야당 지도자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김종심<논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